마지막 날 붉은색 셔츠 어릴 때부터 삼촌 흉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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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엔 우즈가 지난 9일(한국시간) 초청 선수로 출전한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2라운드 9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피츠퍼드 로이터=연합뉴스]

“내 성이 우즈라는 이유로 엄청난 기대와 주목을 받는 게 기쁘지만은 않았다. 이제는 삼촌의 후광이 아닌 내 실력과 노력으로 인정받고 싶다.”
지난달 말 프로로 전향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37)의 조카 샤이엔 우즈(22)는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부담스러워했다. 샤이엔은 우즈의 이복형인 얼 우즈 주니어(57)의 딸이다. 얼 우즈 주니어는 2006년 세상을 떠난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 얼 우즈가 첫 결혼에서 낳은 큰아들이다.

‘골프 황제의 조카’ 샤이엔에게 골프는 숙명이었다. 샤이엔은 삼촌처럼 아주 어렸을 때 골프클럽을 처음 잡았다. 삼촌 타이거와 마찬가지로 첫 스승은 얼 우즈였고 골프를 처음 접한 장소는 얼의 차고였다. 얼은 타이거가 썼던 클럽을 잘라 손녀를 위한 클럽을 만들어 줬고, 또 한 명의 타이거 우즈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얼은 아들 타이거를 혹독하게 몰아붙였던 것과는 달리 손녀에게는 관대했다고 한다. 손녀에게 골프를 강요하지 않고 즐기는 법을 가르쳤고 샤이엔은 할아버지의 바람대로 골프를 놀이처럼 즐겼다. 8세 무렵 첫 대회에 나가 9홀에서 96타를 친 뒤 “가장 높은 점수를 냈기 때문에 내가 이긴 것”이라고 즐거워했다고 한다.

샤이엔은 3세 때 부모가 이혼한 뒤 할아버지 얼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얼은 샤이엔의 레슨비는 물론 대회 출전경비 등을 지원했고 대회장까지 따라다녔다. 타이거는 그런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는 샤이엔을 위한 것이라면 뭐든지 하셨다. 내게 해 줬던 것보다 더 많은 걸 해 주고 싶어하셨다”고 회고했다. 타이거 역시 후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조카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고 샤이엔이 14세 땐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전 스윙 코치인 행크 헤이니에게 레슨을 받도록 해 줬다.

골프 가문의 후예답게 샤이엔은 어린 시절부터 골프에 소질을 보였다. 10세 때인 2000년 US 키즈토너먼트에서 첫 우승을 했고, 크고 작은 대회에서 30승 이상을 거뒀다. 삼촌 타이거를 동경한 샤이엔은 삼촌처럼 마지막 날에는 붉은색 셔츠를 입고 경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할아버지 얼 우즈는 그런 샤이엔을 보면서 눈을 감기 직전까지 “샤이엔은 언젠가 큰일을 할거야.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샤이엔의 어머니 수전 우즈는 딸의 재능이 ‘우즈’라는 성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할까 늘 염려했다. 그래서 언론의 빗발치는 취재 요청을 정중히 사양하고 딸이 평범한 아마추어와 같은 길을 걷도록 했다. 수전은 “샤이엔이 유명한 삼촌을 둔 덕분에 감내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샤이엔이 그런 부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또래처럼 성장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샤이엔은 어머니의 조언대로 주위의 지나친 관심과 기대에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2009년 웨이크 포리스트 대학에 입학해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샤이엔은 4년간 장학생으로 캠퍼스를 누비면서 2011년 ACC(Atlantic Coast Conference)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ACC는 노스캐롤라이나·듀크·보스턴 등 미국 동부의 스포츠 명문대학들이 속한 리그다. 샤이엔은 육상팀에 들어가 단거리와 멀리뛰기에 도전했고 탁구, 하이킹, 암벽등반, 스카이다이빙 같은 스포츠도 즐겼다. 샤이엔은 “골프만을 강요하지 않았던 가족들 덕분에 골프와 인생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4년간의 대학 생활에서 다양한 목표를 세우고 이뤄내면서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었다. 평생지기 친구들도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대학을 졸업한 샤이엔은 프로 전향을 선언하고 삼촌 타이거의 소속사인 엑셀스포츠매니지먼트와 계약했다. 타이거 우즈는 “샤이엔은 여자 골프계의 빅스타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며 크게 반겼다. 샤이엔은 6월 초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에 초청받아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첫 대회 성적표는 10오버파로 3타 차 예선 탈락. 하지만 미국의 골프채널은 샤이엔의 모습을 자주 보여 주며 타이거와 샤이엔의 모습을 비교하는 등 ‘여자 타이거 우즈’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샤이엔은 골프 황제 조카로서의 숙명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샤이엔은 “많은 사람이 나와 삼촌의 골프·생김새·성격까지 비교하려 한다. 하지만 삼촌과 나는 다르다. 그 때문에 반드시 ‘여자 타이거 우즈’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여자 우즈보다는 내 이름 샤이엔으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다.

샤이엔은 나이보다 훨씬 침착하고 멘털이 강하다. 부모의 이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등의 부담을 모두 떨쳐내기까지 어머니 수전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샤이엔은 “언제나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한다. 또 삼촌처럼 강인한 멘털이 내 안에도 있다. 코스 안에서 내 경기에만 잘 집중한다. 힘든 상황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극복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샤이엔은 22일 나이키골프와 정식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삼촌 타이거와 마찬가지로 모자부터 의류·클럽·신발까지 나이키골프 제품으로 무장하고 코스를 누비게 된다. 샤이엔은 “어린 시절부터 그려 왔던 꿈들이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다”고 기뻐했다. 지역 예선을 통과해 7월 초 열리는 US여자오픈에 출전하게 된 샤이엔은 올겨울 퀄리파잉(Q) 스쿨에 도전해 LPGA 투어에 서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샤이엔은 “LPGA 투어에서 우승하고 싶고 세계랭킹 1위도 하고 싶다. 삼촌보다는 어니 엘스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파워 있는 샷을 날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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