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 고과 최하 땐 행원보다 낮은 연봉 … 자살 부른 지점장 ‘성과 스트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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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조모(49) 지점장이 “실적 압박 때문에 출근하기가 두렵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지난 18일 자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은행 지점장의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요즘 시중은행은 세분화된 ‘성과 평가 시스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핵심성과지표)’와 동료 집단 간의 상대평가 등으로 지점장 실적을 관리하고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지점장들은 “매순간 실적을 점검하며 사는 것이 괴롭다”고 말한다. 서울 송파구 한 지점의 B지점장은 매일 아침 컴퓨터를 켜면 성과 평가 시스템인 KPI에 접속한다. KPI는 50여 개 평가 항목별로 이 지점의 실시간 실적과 은행 내 순위, 점수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예금 유치 규모, 대출 실적에서부터 연체율, 신용카드 발급 실적, 인터넷뱅킹 가입 권유 실적까지 끝이 없어요.”

 수십 개의 성과 지표를 일일이 점검하면서도 영업을 소홀히할 수는 없다. 또 다른 은행의 C지점장은 “지점의 수신·여신 실적이 나쁘면 당장 직원 사이에서 ‘지점장이 무능해서 그렇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학연·지연·혈연을 총동원해 뛰고 경조사를 챙기다 보면 눈코 뜰 새가 없다”고 말했다. 기계적인 평가에 불만을 품는 지점장도 많았다. 서울 중구의 한 지점을 맡고 있는 D지점장은 “어떤 지점은 주변 환경이나 전임 지점장의 잘못 때문에 실적이 나아지기엔 한계가 있는데도 평가에는 잘 반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병원 신세를 지는 지점장이 한둘이 아니다”라고도 귀띔했다.

 실적에 따른 신상필벌이 뚜렷한 것도 지점장 스트레스의 원인 중 하나다. 한 시중은행의 경우 다섯 개 등급 중 최고 등급을 받은 10%의 지점장은 기본급의 160%를 받는 반면, 최하 등급을 받는 10%의 지점장은 기본급의 60%만 받는다. 이 은행 관계자는 “최하 등급을 받으면 지점장 연봉이 지점의 행원보다도 한참 낮을 수 있다는 뜻”이라며 “경제적 고충보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이 더 견디기가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SC은행은 ‘부진점 회의’를 운영한다. 지역 본부 단위로 최근 실적이 부진한 지점장을 모아 실적이 부진한 이유를 묻고 어떻게 만회할지를 발표하게끔 하는 회의다. 이 은행 관계자는 “한 달에 두세 번씩 부진점 회의가 열리는데 참석 통보가 오면 다들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며 “숨진 조 지점장도 부진점 회의에 여러 번 참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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