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가 PC방엔 여대생들 떼로 몰려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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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서울 반포고 3학년 최모(18)군은 지난 7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총점이 20점 이상 하락하고, 전교 등수도 30등 이상 떨어졌다. 지난달 출시된 롤플레잉게임 ‘디아블로3’ 삼매경에 빠져서 그랬다는 게 최군의 설명이다. 그는 “일요일에 딱 2시간만 하려고 PC방에 발을 들여놨다가 매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디아블로3가 출시된 지 5주가 지났음에도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우선 고3 수험생, 특히 남학생들 사이에선 현재 진행 중인 유로2012(유럽축구선수권대회), 다음 달 27일 개막하는 런던올림픽, 그리고 디아블로3가 수능 성적을 떨어뜨리는 ‘3대 수능 브레이커’로 불리고 있다. 디아블로3는 잔혹성·중독성 때문에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받았지만 역설적으로 중·고교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 게임으로 떠올랐다.

 30~40대 회사원들도 마찬가지다. 회사원 전경수(34)씨는 매일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여의도역 인근 PC방에서 디아블로를 한 시간씩 한다. 증권사와 각종 기업체가 밀집한 여의도의 PC방들은 디아블로3 출시 이후 때아닌 ‘넥타이부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게임트릭스 집계에 따르면 디아블로를 즐기는 여대생과 중년 남성의 비율도 눈에 띄게 늘었다. 대학가 PC방에선 여대생 비중이 세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디아블로3를 즐기기 위해 컴퓨터 사양을 업그레이드하는 사용자가 많아 PC부품 시장도 전년도에 비해 30% 팽창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 온라인 게임 특유의 중독성 때문에 일상생활에 차질을 빚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또 사용자가 과도하게 몰리며 서버가 다운돼 사용자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환불요구가 이어지자 문화체육관광부는 디아블로를 수입하는 블리자드코리아 측에 시정권고 조치를 내렸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조사에 착수했다. 결국 블리자드코리아 측은 18일 “게임 이용에 불편을 느낀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환불하겠다”고 발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PC방 업주들은 “접속 장애와 서버 점검으로 이용 요금이 잘못 부과됐으니 보상하라”며 20일부터 사흘간 청담동 블리자드코리아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경희대 이택광(영미문화학) 교수는 “가상공간에서 적을 물리치고 자신의 등급을 업그레이드하는 디아블로3는 대리만족의 수단”이라며 “현실에선 이루기 힘든 일을 게임 속에서 해낼 수 있어 모든 세대가 열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양대 남영(교양교육원) 교수는 “디아블로3는 몰입력이 높아 중독되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제도적인 보완을 통해 절제력이 부족한 미성년자의 과도한 게임사용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선영 기자

◆디아블로=미국의 온라인게임 제조업체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에서 1997년 처음 출시한 롤플레잉(RPG) 게임. 마을을 구원하는 용사가 돼 거대한 악마 메피스토·디아블로·바알 등을 물리쳐야 한다. 2000년 2편에 이어 올해 3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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