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아이콘, 바게트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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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게트백이 돌아왔다. 패션 좀 안다는 여성들이 어깨 밑에 끼고 다니는 작고 심플한 펜디의 ‘바로 그 가방(it bag)’이다. 바게트백이 등장한 해는 1997년도다. 15년 동안 1000개가 넘는 모델이 출시됐다. 유행의 속도가 빠르고 변덕스러운 패션 업계에서는 드문 일이다. 시대를 초월해 스타일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바게트백의 행보를 알아봤다.

 바게트백이라 하면 프랑스의 바게트빵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실이다. ‘바게트백’이란 가방의 이름은 바게트 빵에서 파생됐다. 어깨 밑에 바게트 빵을 끼고 다니는 프랑스인처럼 어깨 밑에 끼고 다니는 작고 화려한 핸드백이어서다.

 바게트백이 여성들에게 어필한 가장 큰 이유는 화려하면서 실용적이란 점이다. 어깨에 메면 핸드백이 되고, 손에 들면 클러치백이 된다. 마치 패션 스타일을 마무리하는 마침표와 같다. 그래서인지 많은 패션 셀러브리티의 옷차림에 단골로 등장했다. 요르단의 라니아 왕비부터 마돈나, 샬롯 카시라키, 사라 제시카 파커까지 2000년대의 패션을 풍미한 아이콘 같은 백이다.

 바게트백을 만든 실비아 벤츄리니 펜디는 “다른 무엇보다 편하고 실용적인 핸드백을 제작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가 펜디의 액세서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던 1995년은 한창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던 때다. 심플하고 모던한 질 샌더, 프라다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2년 후에 ‘바게트백’을 만들어냈다. 단순한 형태를 이룬 작은 사이즈의 가방과 손잡이는 미니멀리즘을 반영한다. 반면 소재나 디자인에 따라 가방의 얼굴은 다양하게 바뀐다.

 원래 펜디는 화려한 디테일이 많은, 바로크적인 성향이 강한 브랜드다. 벤츄리니 펜디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고 만드는 첫 가방을 미니멀리즘으로만 표현하기엔 반항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는 스스로를 ‘지칠 줄 모르는 반항아’라고 표현하며 바게트백을 세상에 내놓았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가방의 얼굴격인 몸통은 화려하게 꾸며진 가방이다.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바게트백은 곧이어 ‘잇 백’으로 등극했다. 파리에서는 매장이 문을 열기도 전에 가방을 사려고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은 바게트백이 다양한 버전(15년 동안 1000종이 출시)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가격대가 여럿인 것도 한 몫을 했다. 디자인에 따라 100만원이 안 되는 것도 있고 1000만원대 가방도 있다.

 바게트백에 관련된 일화도 생겼다. 2000년대 패션 스타일의 역사를 새롭게 쓴 드라마‘섹스앤더시티’의 사라 제시카 파커가 대표적이다. 극중 캐리가 느닷없이 만난 도둑에게 신발과 가방을 뺏기는 장면이 있다. 가방을 달라고 협박하는 도둑에게 그는 “그냥 가방이 아니라 바게트백”이라고 외친다. 뒤이은 캐리의 독백은 ‘요즘 도둑들은 패션을 안다’였다.

 펜디는 15주년을 맞아 바게트백의 이야기를 담은 책 ‘바게트 북’을 출간했다. 실제 바게트백이 들어갈 만한 크기(39×34.5cm)로 만들어졌다. 책 안에는 절제된 디자인의 바게트백부터 자수와 시퀸, 비딩, 모피를 사용한 것까지, 250가지의 가방 사진이 담겨 있다.

 15주년을 기념해 1000개의 바게트백 중에 6개가 리에디션으로 선정돼 다시 판매된다. 실비아 벤츄리니 펜디가 직접 선택한 6개의 가방으로 데님 바게트·골드 바게트·미러 바게트·주까 바게트·투카노(큰 부리새) 바게트·파그리아(밀짚) 바게트다.

 선정된 6개의 가방은 벤츄리니 펜디가 당시 가방을 만들게 된 사연이 깃들어 있는 추억의 작품이다. 예를 들면 데님 바게트에 관한 기억은 이렇다. 실비아 벤츄리니 펜디가 아이들과 함께 정원에서 놀고 있을 때 막내 딸 레오네타가 데이지 꽃을 꺾어 그의 청바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 기억을 살려 만든 것이 데님 바게트백이다. 데님 위에 비즈로 꽃 모양이 장식된 디자인이다.

 이 외에도 폰자섬 여름별장의 석양과 바다에서 영감을 받은 ‘골드 바게트’, 활기 넘치는 브라질의 도시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살았던 기억을 담아 만든 ‘투카노 바게트’ 등이 있다. 시즌이 지나 판매가 끝난 바게트백에 아쉬워했던 매니어에겐 희소식이다.

 15주년을 기념한 행사들을 벌이고 있지만 사실 벤츄리니 펜디는 ‘기념’이란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를 추억하기보다 앞으로의 계획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주년을 기념한 리에디션을 고르고, 바게트북을 만든 이유는 단 하나다. 바게트백의 행보가 이후로도 계속 될 것을 예고하는 벤츄리니 펜디의 의지다.

 벤츄리니 펜디가 고른 6개의 빈티지 바게트백과 바게트북은 이달 중순부터 전 세계펜디 매장에서 판매 개시됐다. 바게트백의 매니어를 위한 홈페이지(baguette.fendi.com)도 6월(한국어 서비스는 7월부터)부터 선보이기 시작했고 빈티지 리에디션 바게트백의 출시를 축하하는 이벤트도 세계 각지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은 6월 21일 롯데백화점 잠심점 펜디 부티크에서 열리며 본인의 바게트백을 들고 오면 된다.

<글=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사진="펜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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