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비뚤어진 연봉조정위원회

중앙일보

입력

지난 2월 20일 오후 KBO는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연봉조정위원회에서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 송지만은 올 시즌 연봉을 구단 제시액인 1억 1천 600만원에 계약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구단에 1억 5천만원을 요구했던 송지만은 이 결정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즉 조정위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임의탈퇴선수로 공시가 되어 유니폼을 벗어야 한다.

이번에도 연봉조정위원회는 구단 편을 들어 줌으로 해서 구단이 선수를 상대로 100% 승리를 거두는 기형적인 현상이 계속되었다.

지난 1994년 당시 해태 타이거스의 투수 조계현(두산)이 연봉조정에서 쓴잔을 마신 이래 7년 만에 열린 연봉조정위원회는 당초 예상한 것처럼 구단의 일방적인 승리로 결정이 나 선수들에게 불신감을 심어 주었다.

이날 연봉조정위원회의 구성 멤버로는 이상국 KBO 사무총장과 최돈억 KBO 고문변호사, 유홍락 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백인천 전 삼성 감독이 위원이었는 데 무엇보다도 선수 대표도 선수측 변호사도 없는 구단 측에 유리한 회의였다는 점에서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선수측에서 왜 그 만큼의 연봉을 받아야 하는 지 소명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이 회의는 열릴 필요가 없다. 구단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이 당연한 것으로 나올 때 벌써부터 이 회의는 그 값어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선수들이 선수협을 결성하려고 했던 목적 중 하나가 바로 KBO 에 선수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고 또한 그 권리를 찾고자 함에 있었다. 여기에는 그 동안 백전 백패를 당해왔던 연봉조정위원회에 대한 수술이 필요하다는 데 누구 할 것 없이 공감하고 있었다.

선수협 사태가 불거지고 구단과 KBO에서는 비난 여론에 혼이 났음에도 이번 조정위원회도 구단 위주로 열렸다. 선수들에게는 유리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공명정대한 회의기구로 인식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구단들과 KBO 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선수들의 투쟁이 너무나 약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KBO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설립 의도는 분명히 구단과 선수들의 이익을 도모하고 분쟁이나 갈등이 생겼을 때 조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년 동안 구단들의 대변기구로만 전락을 했다.

권위는 강제적으로 상대방을 제압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공명정대하고 신뢰를 심어 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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