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범인 1000명 잡은 31세 체포왕 "고교땐 일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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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김준년(31) 경사가 수갑을 꺼내 보이며 체포왕이 된 비결을 얘기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09년 7월 울산시 남부경찰서 형사과.

 ‘깍두기’ 머리의 한 조폭이 인근 술집에서 술값 20만원을 내지 않고 행패를 부리다 잡혀 왔다. 그는 “난 죄가 없다”며 욕설을 내뱉고 난동을 부렸다. 그러자 한 경찰관이 성난 얼굴로 일어나 수갑을 들고 다가갔다.

 “조용히 하라”며 수갑을 채우려던 순간 경찰관은 멈칫했다. 조폭이 10여 년 전 고교 ‘일진’ 시절 함께 어울리던 친구였던 것이다. 그는 “반갑다”는 말 대신 수갑을 채웠다. 바로 울산경찰청 김준년(31) 경사다.

 울산 지역 범죄자들에겐 ‘폭탄 형사’로, 경찰과 지역사회에선 ‘체포왕’으로 불리는 그는 지난 5일 경장에서 경사로 1계급 특진했다. 지난 3년간 무려 343명의 범죄자를 잡은 공로다. 앞서 2007년 말엔 순경에서 경장으로 2년 반 만에 특진했다. 보통 12년이 걸리는 순경→경장→경사를 7년 만에 도달했다. 동료인 고성준(40) 경사는 “너무 성실한 데다 사건을 맡으면 정말 죽자고 덤빈다”며 “수사력을 타고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울산제일고교 시절 성실과는 거리가 먼 ‘일진’이었다. 수업시간엔 창가 옆 맨 뒷자리에 앉아 이유 없이 친구들을 괴롭혔다.

  “공부가 싫은 데다 싸움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다 보니 어느새 일진이 돼 있었어요.” 한 반 53명 중 성적이 늘 꼴찌였던 그는 대학 진학도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러나 2000년 고교를 졸업하면서 후회가 몰려왔다. 공부를 안 한 탓에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웠다. 이대로는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못하겠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노란색이던 머리 염색을 풀었다. 그러곤 2001년에 입대했다. 폐 이상으로 공익요원으로 근무하면서 경찰관이 되기로 결심했다. 근무하던 구청의 공무원이 “넌 지금처럼 살면 미래가 없다. 이제라도 공부해 공무원이 되는 게 어떠냐”고 조언한 게 계기였다.

 키 1m77㎝, 몸무게 72㎏인 그는 “싸움을 하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며 “철없던 일진 시절을 잊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에 경찰이 딱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대 후 순경시험에 도전했다. 하지만 기초가 안 된 탓에 사수(四修) 끝에 2005년 7월 합격할 수 있었다. 울산시 남구 삼산지구대에서 시작한 초임 경찰관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과거 함께 놀던 친구들이 수시로 찾아와 사건 청탁을 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잘라 거절했다. 자연히 옛 친구들과 멀어졌다.

  그는 매일 오전 6시에 출근해 남들보다 늦게 퇴근했다. “저한테는 경찰관 자체가 과분했어요. 정복을 입은 나 자신을 보면 뭔가 힘이 불끈불끈 솟았어요.”

  울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와 남부경찰서 형사과를 거치며 그의 진가가 발휘됐다. 2007년 말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비방글을 올린 20명의 선거사범을 검거했고 울산 조직폭력배 2개 파 20명을 소탕했다. 2010년 울산경찰청 수사2계로 스카우트된 뒤에는 공군 화생방 시설공사를 하며 업자로부터 1억원을 받아 챙긴 군 장교 10명을 붙잡았다. 지금까지 그가 체포한 범법자는 1000여 명에 이른다.

 비결은 1000여 명에 이르는 정보원에 있다. 사건 때마다 범인 검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는다. 어릴 때 뒷골목을 다니며 직접 보고 들은 범죄 이야기도 큰 도움이 됐다.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2009년 4월 출소한 지 1개월 된 특수절도범을 검거할 때다. 부산에서 마주친 100㎏ 거구의 절도범은 쇠입간판을 휘두르며 저항했다. 얼굴로 날아오는 입간판을 팔로 막다가 골절상을 입었다.

 그는 고교 시절 생각에 학교폭력 가해학생들을 예사로 봐 넘기지 않는다. “지금은 힘 자랑하며 아무 걱정 없지만 결국 폭력배나 절도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나이 들면 후회한다고 설득한다”고 말했다. 미혼인 김 경사는 2010년부터 울산대 영어과(야간)에 다니고 있다. 영어 공부를 더 해 해외공관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싶다는 꿈을 위해서다.

울산=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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