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미래의 눈, 언론의 눈, 대권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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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정재
경제부장

#1. 미래의 눈.

 하와이 주립대학의 최고 명물은 사람이다. 미래학자 짐 데이터 교수. 앨빈 토플러와 함께 1977년 대안미래연구소를 설립해 미래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가르치는 일에 정년이 왜 있냐”며 소송을 내 하와이대 종신교수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올해 팔순이지만 총기와 열정은 젊은이 뺨친다. 청바지에 티셔츠, 바가지 머리를 40년 넘게 고집해 온 스타일리스트이기도 하다. 내 눈엔 별것 아닌 차림새지만 그가 들이는 공은 남다르다. 그는 “아침마다 ‘꽃 단장’에 2~3시간 정도를 쓴다”고 말한다. 그에 대한 이런 저런 일화는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남다른 눈을 가졌다. ‘미래의 눈’이다. 늘 미래의 눈으로 오늘을 재고, 과거를 돌아본다. 지난달 그가 동료·제자들과 함께 마련한 미래학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강의 중 그가 던진 두 개의 질문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는 그 스스로 ‘새로운 윤리적 질문’이라 이름 붙인 질문이다. “현 세대의 과도한 복지와 환경 파괴, 에너지 소비를 어떻게 봐야 하나.” 그는 이를 ‘미래에 대한 일방적 폭력’으로 규정했다. 왜 일방적인가, 그럴 수밖에. 미래 세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항변조차 할 수 없다. 왜 폭력인가. 후대의 자원·돈을 허락도 없이 마구 써대 후대를 빚쟁이로 만들었으니 폭력이 아니면 뭔가.

 “우리는 미래 세대에 영향을 주고 (때릴 수도 있지만) 미래 세대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고 때릴 수도 없다.”

 그는 대안도 전했다. 그 유명한 필리핀 변호사 안토니오 오포사(Antonio A. Oposa, Jr) 스토리다.

 “오포사는 환경보호론자였어요. 90년대 초 필리핀 어린이 43명과 미래 세대를 대리해 소송을 냈고, 이겼습니다. 필리핀의 숲을 개발하지 말아 달라는 소송이었지요(당시 필리핀 대법원은 ‘아직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미래 세대의 제소권을 인정하는 게 법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미래 세대가 현 세대를 이긴 판례로 기록됐어요.”

 그의 대안은 간결·명료했다. ‘미래의 눈으로 세상을 읽고 실천하는 능력자, 오포사 같은 이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한국은 그런 사회인가? 그가 던진 두 번째 질문이다.

 #2. 언론(소통)의 눈.

 이달 초 이사한 중앙일보 편집국 8층 정 중앙에는 ‘뉴스 아이(News eye)룸’이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편집 등 6명의 에디터와 편집국장이 모여 있는 타원형 공간이다. 눈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고 뉴스 아이다. 뉴스 아이룸을 중앙에 두고 각 에디터가 관할하는 부문의 부장과 부서가 방사형으로 뻗어 있다. 공상과학영화 속 우주 항모의 컨트롤타워를 연상하면 쉽다.

 뉴스 아이는 소통의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세상 구석구석의 정보가 들고 난다. 청와대 구중심처(九重深處) 얘기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상대적으로 거친 언어와 독한 말도 이곳에선 훌륭한 재료다. 보고 느끼고 소통하고 토론하는 장소다. 중앙일보 뉴스는 이런 ‘언론의 눈’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온다.

 #3. 대권의 눈.

 2012년 6월, 대권 주자들의 발걸음이 재다. 어제는 문재인, 지난주엔 손학규의 출마 선언이 있었다. 몇 달 안 남은 큰 승부를 앞두고 문득 드는 궁금증. 도대체 ‘대권의 눈’은 어떻게 생겼나, 어때야 하나. 나는 그게 ‘미래의 눈+언론의 눈’이었으면 좋겠다(제발 오해하지 말라. 이때 언론의 눈은 뉴스 아이만 지칭하지 않는다. 세상과 소통하는 모든 매체를 포함한다).

 박근혜가 만드는 미래, 안철수가 만드는 미래, 김두관이 만드는 미래는 다를 것이다. 그 미래를 소통의 눈으로 전달했을 때 비로소 국민은 누군가의 미래에 기꺼이 동참하게 될 것이다. 데이터 교수는 ‘미래는 단수(future)가 아니라 복수(futures)’라고 말한다. 인간의 노력에 따라 여러 가지 미래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는 한국을 잘 알고, 한국의 미래를 믿는다고 말해 왔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더 묻고 싶어했다. “한국인들이여, 당신들이 선택한 미래는 어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