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서해 해역 쪼그라든 불만 폭발했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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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호 12면

지난달 8일 북한 당국이 나포했다가 13일 만에 풀어준 중국 어선의 선원들이 고향으로 귀환하는 배의 갑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다롄 AP=연합뉴스]

북한과 중국의 육상 경계선은 이미 틀이 잡혀 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중간에 두고 강 양쪽에 만들어진 섬에 관한 영유권 문제는 북한과 중국이 1962년 체결한 ‘변계(邊界)조약’과 그 2년 뒤 주고받은 실시조약 ‘변계의정서’를 통해 구체적으로 선이 그어지면서 해결됐다.

북한이 中어선 나포한 까닭

해상의 경계선은 그에 비해 분명치 않다. 지난달 8일 중국 어선 3척이 서해에서 조업하다가 북한 측에 의해 나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뒤 중국 어선 3척이 북한 당국에 잡혀있다가 13일이 지나 풀려나면서 북한과 중국의 서해 해상 경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이상하게 그어진 해역 경계
둘 사이의 해상 경계선은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다. 북한과 중국 당국 모두 해상 경계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공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해양법학회 명예회장인 김찬규 전 경희대 교수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양측의 해양 경계선은 동경 124도 선을 중심으로 그어져 있다.

김 명예회장은 “북한과 중국은 변계조약을 체결하면서 ‘해상 분계선’이라고 부르는 해양 경계선을 설정한 상태다. 압록강 하구 폐쇄선상의 동경 124도10분06초와 북위 39도49분41초, 그 남쪽으로는 동경 124도09분18초와 북위 39도43분39초, 다시 남쪽으로 동경 124도06분31초와 북위 39도31분51초의 한 지점을 직선으로 연결해 동서를 북한과 중국이 관할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중국어선 나포 사건은 이 ‘해상 분계선’을 기준으로 볼 때 불법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어선이 나포된 지점은 동경 123도57분, 북위 38도05분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어선의 어로 작업 지점이 북한 경계선 밖이었다는 사실을 들어 당시 중국 언론은 북한 당국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영해 측정 기선에서 200해리를 중심으로 긋는 배타적경제수역(EEZ)의 틀로 볼 때는 문제가 다르다. 중국과의 배타적경제수역이 겹칠 때 ‘바다의 반분선(半分線)’을 경계로 한다는 원칙에서는 중국 어선이 불법 어로를 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1977년 6월 21일 배타적경제수역을 제정해 그해 8월 1일부터 적용하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북한의 이번 중국어선 나포 사건은 둘 사이의 해상경계선을 사이에 둔 갈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북한의 수역은 중국과 맺은 ‘해상 분계선’을 적용할 경우 매우 좁아진다. 정상적인 방법에 따라 경계선을 긋는다면 동경 124도에서 123도 쪽으로 훨씬 많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도 한반도 서해의 북부 해역 경계는 북한이 중국과 설정한 경계선보다는 훨씬 넓다. 조선 시대 해로(海路)를 통해 명(明)나라를 오갔던 사절단의 기록에 따르면 더욱 그렇다. 조선의 중국 사절인 연행사의 기록을 오래 연구해 온 동국대학교 서인범 교수는 “방대한 연행록의 기록을 보면 조선의 선비들은 현재 중국 랴오닝(遼寧)성 관할인 녹도(鹿島)와 해양도(海洋島)에서 중국의 해역이 시작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조선 때는 서쪽으로 더 나아가
녹도는 압록강 하구에서 중국 쪽으로 제법 떨어져 있는 섬이다. 해양도는 녹도 남쪽에 있으며, 당시 조선 사절단은 이 섬을 해랑도(海浪島)로 적었다. 서인범 교수는 “해역 경계에 관한 조선 사절단의 인식은 다양하다. 압록강 하구 남쪽의 철산군에서 서쪽으로 40리 바다에 있는 거우도(車牛島), 압록강 하구의 신도(薪島), 장자도(獐子島)를 경계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중국령인 녹도를 중국 해역으로 진입하는 경계선으로 생각해 임금께 ‘나라의 경계 밖으로 나선다’는 내용의 장계를 써 올린 경우도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 녹도와 해양도에는 조선 사람들이 직접 들어가 살았다는 기록도 있다. 서 교수는 “녹도는 물론이고 더 서남쪽에 있는 해양도(당시 기록은 해랑도)에 조선인들이 밭을 경작하고 살았으며 조선 정부가 이들을 쇄환(刷還· 붙잡아 들임)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내용이 조선실록 등 각종 기록에 자주 등장한다”고 말했다.

외교와 의전(儀典) 등을 다뤘던 조선의

통문관지(通文館志)에는 녹도를 가리켜 “여기서부터 (중국) 요동의 경계에 속한다”고 적고 있다. 중국과의 외교 문제를 다루는 조선의 공식 기록에 등장하는 내용으로, 실제 조선의 해역 인식이 중국 요동 지역 안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조선 시대 해로를 통해 중국을 오갔던 선비들의 해역 인식에 비해 현재의 북한 해역은 아주 줄어든 셈이다. 압록강 하구 신도에서 거의 직선으로 내려오는 동경 124도 인근에 북한의 해역이 갇혀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리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북·중 비밀주의에 사실 확인도 어려워
국제해양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시립대 이창위 교수는 “북한과 중국의 해역 경계선을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중국 국가해양총국에 이를 문의했는데 전혀 답이 없다”며 “북한 또한 이 문제를 두고 정확한 내용을 공표한 적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62년 북한과 중국 간의 ‘변계조약’을 통해 해상 경계선이 설정된 만큼 그 자체를 흔들기보다는 한반도 통일 후의 상황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북한법을 연구하고 있는 한명섭 변호사는 “국가 간 경계에 관한 사안이어서 현재의 해역 또한 대한민국이 한반도를 통일한 후에도 그대로 승계하는 형식이 가장 유력하다”며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을 몰아내고 대륙을 통일한 뒤 국민당 때 맺어진 조약을 모두 무효화한 경력이 있어 이를 근거로 우리도 통일 후에 현재 북한과 중국이 맺은 조약에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책도 마땅치 않아 문제다. 우선 북한과 중국이 서해 북방 해역 경계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어 ‘사실(fact) 확인’ 자체가 어렵다. 김찬규 전 경희대 교수는 “해역 경계선을 긋기 위해서는 압록강 하구의 신도 등에 관한 자세한 지도가 우선 필요하다”며 “그러나 북한과 중국 모두 이 지역에 관한 자세한 지도 자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과 중국의 경계 문제 등에 관해서는 국회 차원의 상징적인 ‘결의’가 아니라 좀 더 높은 국가 차원의 종합적이면서 치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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