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창구 송금수수료 잇따라 면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9면

시중은행이 자동화기기(ATM) 수수료에 이어 창구 수수료 인하에 나서고 있다. 14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은 창구에서 같은 은행으로 돈을 보낼 때 발생하는 송금 수수료를 잇따라 면제하기로 했다.

 국민은행은 이날 창구에서 국민은행 계좌로 송금하는 모든 고객에게 수수료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창구에서 국민은행 계좌로 송금할 때 10만원 초과에서 100만원까지는 800원, 100만원 초과 금액에 대해서는 1200원의 수수료를 받아 왔다. 또 신한은행은 15일부터, 농협은 20일부터 당행 창구 송금수수료를 면제키로 했다. 다만 다른 은행으로 돈을 보낼 경우에는 수수료가 부과된다.

 정훈모 국민은행 수신부장은 “당행 창구송금수수료 면제를 통해 가계금융비용 부담을 없애는 등 앞으로도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우리은행과 하나·외환은행도 같은 은행으로 보낼 때 최고 1500원을 받던 수수료를 잇따라 폐지했다. 씨티·대구은행 등도 현재 수수료 면제를 위해 전산작업을 진행 중이다.

 시중은행이 수수료를 깎아주며 내세운 명분은 서민 부담을 덜어주고, 정부가 추진하는 공생발전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과다한 수수료 수입에 대한 비난 여론도 어느 정도 감안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은행 수수료를 내리려는 금융 당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은행의 과다 수수료 논란이 불거진 이후 “불합리한 수수료 관행 개선 방안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할 것”이라며 수시로 은행을 압박해 왔다. 특히 지난 3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는 “창구거래 의존도가 높은 65세 이상 고령자, 다문화 가정 등 취약계층에 우선 창구 송금수수료를 면제하거나 할인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며 은행 측에 창구 수수료 체계를 손질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이후 금감원은 은행 실무자와의 회의를 통해 창구 수수료 인하 방안을 논의해 왔다.

 금감원에 따르면 A은행에서 B은행으로 돈을 보낼 경우에는 금융결제원의 시스템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같은 A은행끼리 돈을 주고 받을 경우에는 내부 전산망을 이용하므로 별도의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금감원이 은행에서 창구 수수료를 내릴 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근거다.

 일단 시중은행은 창구 송금수수료를 안 받기로 결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부의 ‘팔 비틀기’라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전산망 유지, 창구 직원 인건비, 마케팅 비용 등에 대한 원가구조 분석도 없이 여론몰이에 휩쓸려 은행을 희생양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 간 경쟁을 통한 시장원리가 아니라 반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창구 직원이 업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과 시간, 내부 전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발생하는 각종 비용을 감안하면 아무리 같은 은행 간 거래라고 해도 돈을 받는 것이 시장원리에 맞다”며 “포퓰리즘에 따른 압박이 계속된다면 금융 시스템 전체가 불안해질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