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부터 어른까지 게임 열풍…게임 전문학원도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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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취미예요.”
외국어 학원을 다니듯이 이젠 게임학원을 다니는 시대가 왔다. 흔히 게임 관련 학원이라고 하면 게임을 만드는 ‘개발학원’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젠 게임을 만드는 학원이 아니라 게임을 ‘가르치는’ 학원이 등장했다.

게임을 단순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목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에는 ‘돈’까지 들여가며 게임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볼링이나 당구, 골프를 순간적인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취미생활’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많은 돈을 들여 각종 장비를 구입하며 보다 나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닌다. 게임 마니아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골프채나 볼링 장비를 살 돈으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고 희귀한 게임 소프트를 구입한다. 최고급 마우스나 키보드를 구비하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들에게 보다 나은 게임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벽돌 격파로 알려진 ‘알카노이드’나 유명한 ‘갤러그’, ‘슈퍼마리오’같은 간단한 게임들이 오락실을 차지하고 있었을 때 게임의 역할은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가 전부였다.

게임 시스템이 보다 더 다양화되고 복잡화된 것은 롤 플레잉 게임(RPG)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깨고’ ‘부수는’ 단순한 목적으로 진행되던 게임에 사람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대화를 구현하기 위한 시스템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롤 플레잉 , 전략 시뮬레이션 같이 게임 시스템이 진화하면서 점차적으로 게임은 즐기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학습’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발더스 게이트나 울티마 같은 방대한 게임들은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부터가 ‘일’이다. 이름, 성별 등은 물론이고 힘, 순발력, 지능 등 수십 가지의 수치를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 캐릭터 하나 만드는데 하루가 걸릴 정도다. 그러나 롤 플레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작업들은 자신의 분신을 만드는 ‘즐거운 과정’일 뿐이다.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은 곧 ‘또 다른 자신’을 게임 속에서 구현하기 위한 준비이며 복잡하고 세밀할수록 더 많은 재미를 느낀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디아블로 2.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간단한 게임’으로 여겼다가는 큰코 다친다. 5개의 캐릭터는 각각의 특성에 맞는 스킬 트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스킬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캐릭터의 ‘운명’이 바뀐다. 육탄전을 주무기로 하는 바바리안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 종류만 해도 6가지. 처음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무턱대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테지만 각각의 무기 종류에 따른 장단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순간의 선택으로 몇 개월 동안 키워온 캐릭터를 ‘삭제’해야 하는 일이 발생 할 수도 있다.

게임 속 ‘시세’ 모르면 아이템 구입도 힘들어

캐릭터의 스킬 트리뿐만 아니라 아이템 분야에 있어서도 디아블로 2는 엄청나게 방대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좋은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서는 직접 싸우면서 떨어지는 것을 ‘줍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거의 1백% 운에 의지해야 한다. 때문에 겜블(도박)을 시도하거나 자신의 아이템과 상대방의 아이템을 트레이드 한다. 현금거래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각종 트레이드 사이트에서는 암암리에 현금 가격으로 거래가 된다. 컴퓨터 업계에서는 램 값이 중요하듯 디아블로에서는 화폐로 사용되는 ‘조던 링’(Jordan Ring)의 값이 날마다 들쑥날쑥 한다. ‘시세’를 모르면 아이템도 제대로 구할 수가 없다.

게임을 ‘익히는’ 기본적인 방법으로 그 동안은 매뉴얼이나 분석집을 사서 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최근 등장하고 있는 방대한 규모의 게임은 직접 ‘몸’으로 부딪혀보기 전에는 쉽게 배우기가 힘들다.

얼마 전 TV에서는 스타크래프트 학원이 소개되었다. 수 십만원에 달하는 적지 않은 수강료를 지불하면 프로 게이머 강사에게 다양한 전술을 배울 수 있다. 어린 꼬마부터 회사원, 자영업자, 학생 등 게임을 배우려는 사람도 다양하다. 이들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게임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게임을 통해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찾고, 게임을 취미생활로 인식하고 있는 집단 내에서 ‘인정받기 위해’ 게임을 배우는 것이다.

굳이 학원이 아니더라도 많은 게임 마니아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게임 공부’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게임 잡지들은 게임의 기본적인 공략은 물론 보다 세부적이며 발전된 내용을 연재하고 있다. ‘이 게임은 이렇게 하면 됩니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발견되는 게임 요소를 계속해서 추가해야 한다.

게임이 이렇게 ‘복잡해진 이유’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다 ‘새로운’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쏘고 부수는 게임은 이제 인기가 없다. 같은 롤 플레잉 게임, 같은 액션 게임이라도 무엇인가 새로운 시스템이나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지 않으면 인기가 없다.

‘프로 게이머’라는 직업은 전세계를 통틀어 한국에서만 인증된 직업이다. 게임 소프트 하나만으로도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니아들에게 게임은 이미 새로운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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