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만에 갈라선 천안문 시위 지도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왕단(左), 차이링(右)

1989년 천안문(天安門) 사태 당시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차이링(柴玲·46)이 당시 유혈 진압을 막후에서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온 덩샤오핑(鄧小平) 군사위 주석과 학생 시위를 반혁명 폭도로 몰았던 보수파 리펑(李鵬) 총리를 용서한다고 밝혔다. 90년 중국을 탈출해 홍콩·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2년 전 기독교도가 됐고 예수의 영향으로 이들을 용서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또 다른 시위 지도자였던 왕단(王丹·43·대만 거주)과 우얼카이시(吾爾開希·44·대만 거주)는 천안문 사태 23주년(6월 4일)이 지났지만 중국 정부가 천안문 사태 재평가를 하지 않았다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천안문 사태를 이끌었던 학생 지도부가 불혹을 넘긴 시점에서 시각차를 보인 것이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국어 사이트 둬웨이왕(多維網)은 차이가 4일 미국 허핑턴포스트에 올린 공개 서한(‘나는 그들을 용서한다’)에서 덩샤오핑과 리펑, 당시 광장을 급습했던 인민해방군을 용서했다고 보도했다.

 차이는 성경 누가복음 24장34절 구절(‘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을 인용하며 “예수가 나에게도 같은 것(용서)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차이의 이런 발언이 공개되면서 곧바로 큰 파장이 생겼다. 또 다른 학생 지도자였던 왕단은 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그의 의견은 존중하지만 그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살인자가 참회도 사과도 하지 않았고 살인을 계속하는 지금 피해자가 용서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우얼카이시는 6일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종교에서 구원의 길을 찾는 것은 기쁜 일”이라면서도 “이상과 민주주의를 위해 학생들이 희생돼 지금도 슬픔을 느끼며 덩샤오핑과 리펑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