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김군이 말한 CCTV 돌려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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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 모 고교 김모(16)군이 지난 2일 오전 대구시 지산동의 한 초등학교 교문에서 축구동아리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맨 오른쪽 보조가방을 든 학생(원 안)이 숨진 김군, 가운데 축구공을 깔고 앉아 있는 학생이 가해자인 김모(16)군이다. [사진 CCTV 화면 캡처]

그는 쾌활하고 똑똑했다. 자존심이 강해 할 말은 하는 아이였다. 성적도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행동이 달라졌다. 말수가 줄고 표정도 어두워졌다. 중학교 때 2등급이던 내신성적이 4등급으로 떨어졌다. 그토록 축구를 좋아했지만 신이 나지 않는 표정이었다. 원인은 지속적인 학교폭력이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폭력은 저항의지마저 꺾어 놓았다. 결국 그는 자살을 택했다. 경찰은 “신고를 하더라도 가해 학생이 처벌받지 않을 것을 우려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는 경찰이 분석한 폐쇄회로TV(CCTV) 화면에서도 나타난다. 대구의 고교 1학년 김모(16)군은 자살하기 직전인 2일 오전 가해 학생이 포함된 축구동아리 회원 10여 명과 함께 있었다. 김군이 지난 2월 썼다가 찢은 유서에서 ‘○○초등학교 앞 CCTV를 돌려보면 (내가) 매일 (가해 학생에게) 잡혀가는 모습이 나올 것’이라고 했던 곳이다. 경찰은 이날 녹화된 내용을 통해 가해 학생이 김군을 자신의 손발처럼 부린 사실을 확인했다.

 이날 오전 8시53분쯤 ○○초등학교 교문 앞. 가해 학생인 대구의 다른 고교 1학년 김모(16)군이 2m 남짓 떨어져 서 있는 김군에게 축구 골키퍼용 장갑 두 개를 던졌다. 갑자기 가슴 쪽으로 장갑이 날아오자 놀란 김군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를 받았다. 가해 학생이 다시 체육복 바지를 벗어 김군에게 던졌다. 김군은 이를 갠 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에 넣었다. 그러곤 자신의 가슴 쪽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휴대전화로 추정) 꺼낸 뒤 가해 학생에게 건넸다. 잠시 후 김군이 메고 있던 가방과 손에 든 청색 가방을 가해 학생에게 넘겨주었다. 그의 가방을 대신 들고 있었던 것이다.

 김군은 지난 3년간 폭행 등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경찰이나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 경찰은 김군이 집요한 폭행 등 괴롭힘에 저항할 의지를 잃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군은 인터넷 축구클럽 회원 5명과 한 카카오톡 대화에서 ‘오늘, 다 끝날 듯하네요 ’라고 썼다. 자포자기한 것이다. 영남대 김정모(심리학) 교수는 “지속적인 가해행위는 피해자를 무기력하게 할 수 있다”며 “자살로서 보복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고 후 가해 학생의 보복을 두려워했을 수도 있다. 김군은 카카오톡 대화에서 ‘경찰에 신고하라’는 한 회원의 조언을 받았지만 ‘(확보해 둔) 증거는 없다’고 답했다.

 경찰은 불안 증세를 보이던 가해 학생이 어느 정도 안정됨에 따라 7일 그를 상대로 김군 폭행 행위에 대해 1차 조사를 벌였다.

대구=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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