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 '코페트 이론'으로 본 이종범(上)-타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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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홈런, 64도루, 타율 0.324
8홈런, 11도루, 타율 0.275

위는 97년 이종범이 한국에서의 마지막 해에 거둔 성적이고, 아래는 일본 주니치에서 작년 거둔 성적이다.

도대체 한국에서의 이종범과 일본에서의 이종범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정말 일본야구 수준이 한국야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높기 때문일까? 하지만 딩고(前 주니치)같은 메이저리그 3할타자들이 형편없이 실패하고, 더블 A선수였던 페드라자(다이에)가 펄펄 나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이종범이 이젠 일본에서 뛴지 3년이나 되었는데도 아직 적응이 안 되었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이제 야구선수로서 한창일 31살인데 노쇠했다는 얘기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한국의 천재타자는 아직도 일본야구에서 만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해 레너드 코페트의 명저 '야구란 무엇인가'는 중요한 단서를 제시해 준다. 코페트는 타격을 '배트를 휘둘러 공을 치고 싶어하는 본능과 살인적인 속도로 날라 들어오는 공을 피하고 싶다는 두려움이 공존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코페트가 타격에서 가장 중시했던 건 타자가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내냐는 것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필자는 98년 부상을 전후로 이종범의 타력에 차이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98년 6월 23일 가와지리(한신)의 공에 맞아 불의의 팔꿈치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종범은 해태시절 못지않은 과감한 타격과 뛰어난 선구안을 보여주었다.

타격이란 거의 천부적인 것이라고 규정한 코페트의 말처럼 워낙 타격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이종범이었기에 생소한 일본야구임에도 금방 적응했던 것이다.

하지만 부상 이후 이종범은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부상당하기 전인 98년초 만큼의 화끈한 타격을 아직까지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왜 일까?

코페트의 이론에 의하면 이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공에 맞아 또 다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런 두려움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종범에게 잠재했기에 부상 이후 이종범은 98년초 때처럼 "때리면 맞겠다. 부상이 대수냐."는 저돌적인 자세로 타석에 바짝 붙어 타격에 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부상이후 예전만큼 바깥쪽 공에 자신있게 스윙이 나가지 않는다는 최근 이종범의 인터뷰로에서도 뒷받침된다. 이렇게 몸쪽 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이종범은 그 영향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바깥쪽 코스까지도 자기 스윙을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타격부진으로 이어졌다고 분석될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올시즌 이종범에게 중요한 건 기술적인 면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인 면에 있다고 여겨진다. 즉, 이종범이 '두려움'이란 원초적 본능(더구나 이종범은 호되게 고생한 경험이 있다)을 얼마나 극복하면서, (좋은 타격을 하기 위한 코페트의 지침인) '힘있게 땅을 딛으면서 날아오는 공을 향해 한걸음 다가설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올시즌 이종범의 3할이 달려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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