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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빠가 많아지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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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기선민
중앙SUNDAY 기자

2주 전쯤 트위터에 올라온 한 아빠의 글에 마음이 뭉클했다. 여준영(42) 프레인 대표의 ‘마지막 반성문’이란 글이다. 국내에서 큰 홍보대행사를 운영하는 그는 평소 블로그(http://prain.com/hunt)에 초등생 아들과 딸을 위한 편지를 쓴다. 문패부터 남다르다. “전 정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마지막 반성문’은 오래 전 그가 아들과의 일로 쓴 글이다. 이 글을 다시 트위터에 소개한 이유는 반성할 일이 다시 생겼기 때문이다. 아홉 살 딸의 생일인데 함께 축하를 해주지 못했다. 요지는 이랬다. “내일 아침 아들 어린이집 운동회가 있다는 사실을 조금 전에야 알았다. 난 내일 오전 2개의 회의를 주관한다. 누구를 대신 보낼 수도 없다. 몇 시간째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운동회가 내일이라는 걸 오늘 낮에만 알았더라도 결례를 무릅쓰고 회의를 취소했을 텐데. ○○아, 이것만은 알아줘라. 이건 일과 내 아이의 경쟁이나, 돈과 내 사랑의 경쟁이 아니라 약속한 것과 약속하지 않은 것과의 경쟁이라 어쩔 수 없이 약속한 걸 택했다는 사실을.”

 누구나 좋은 아빠가 되고픈 로망이 있다. 그게 개인적 차원의 노력만으론 어렵다는 점도 누구나 안다. 오너건 월급쟁이건 밥벌이엔 예외가 없으니까. 눈치 보기 야근, 예고 없는 회식은 물론 주말 거래처 접대, 상사의 호출 같은 변수의 연속이다. 아마 여 대표도 이번이 ‘마지막 반성문’이 되긴 어려울 거다. 그래서 필요한 게 ‘좋은 아빠가 좋은 직원이 된다’는 인식에 바탕 한 제도적 접근이다. 이게 없으면 아이와 일, 사랑과 돈(월급) 사이에 경쟁은 불가피하다.

 ‘가정의 날’을 실시하는 관공서와 기업이 늘어나는 최근 추세는 이런 점에서 고무적이다. 가령 일 많기로 소문난 두 부처인 금융위원회가 4월부터, 기획재정부가 지난달부터 매주 2회 ‘칼퇴근’을 장려하고 있다. 이날만이라도 가족과 저녁밥상에 마주 앉으란 배려다. 그런데 노파심도 든다. 이런 제도의 성공 여부는 시행 주체의 강력하고도 꾸준한 의지에 달려 있다. CEO가 바뀌면서 제도가 아예 없어지는 경우도 봤다. 주2회 정시퇴근을 해도 나머지 사흘에 업무량이 폭주해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하면 그것도 문제다. 정시퇴근 하는 직원을 왠지 능력과 충성심이 떨어지는 듯 여기는 분위기도 제도 정착을 방해하는 큰 요인이다.

 이참에 가정의 날을 도입한 정부부처에 주문하고 싶다. 시행과정을 잘 기록해 1년 후 백서를 내는 거다. 참여율, 시행 후 드러난 문제점, 시행 전후 일터와 가정에서 일어난 변화 등을 두루 점검해보자. 그래서 과연 좋은 아빠와 좋은 직원 간에 인과관계가 어떻게 성립하는지를 알아봤으면 좋겠다. 물론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분들도 잊지 마시라. 매주 1, 2회 정시퇴근의 전제는 평소 ‘도덕적 해이’ 없이 내 업무에 열과 성을 다해 일하는 좋은 직원이 되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