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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올스타전] 슬램덩크 챔피언 미스테리

중앙일보

입력

앞서 소개한 역대 덩크슛 대회의 우승자를 보면 마이클 조던이라는 불세출의 슈퍼스타도 있지만 오히려 우승 이후 소리 소문 없이 리그를 떠난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헤롤드 마이너와 케니 '스카이' 워커. 마이너는 USC(남가주대학) 재학시절 부터 플레이 스타일과 외모가 조던과 유사하다는 평을 들었다. (등번호도 23번을 달았었다.)

요새 카터, 브라이언트가 '제2의 마이클 조던'이니 하는 것의 원조라 볼 수 있었다. 그는 조던과 달리 왼손잡이였고 크리스오버 드리볼 후 페이드 어웨이 슛을 하는것이 특기였다.

입단 당시부터 매스컴에 의해 '베이비 조던'이란 소리를 들으며 NBA에 뛰어든 그는 올스타전 덩크슛 대회에 우승하면서 그 주가를 높였고 그의 덩크모습을 담은 대형 광고판이 제작되는등 경기외적인 면에서는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그의 NBA 경력은 점점 하향세를 나타내고 있었다. 데뷔시절 평균 10.5득점으로 가능성을 보였으나 그후론 계속 한자리수 득점을 올렸으며 출전 시간 또한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

결국 플레이오프의 출전 시간을 놓고 코칭스테프와 불화를 빚었고 마이애미 소속으로 한번 더 덩크슛 챔피언에 오른후 클리브렌드로 트레이드 되고 만다. 그의 NBA 경력은 여기서 멈추게 된다.

클리브렌드에서도 별다른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던 그는 96~97시즌을 끝으로 리그에서 그의 이름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마이애미시절 헤드코치였던 케빈 로커리(현 방송해설자)는 "마이너는 분명히 재능이 있던 선수였다. 그러나 본인이 너무 주위의 기대를 의식한 것 같았다. 다들 제2의 조던이니 베이비 조던이라고 떠들어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을 받았었다."고 말했다.

그가 우승하면서 광고 계약을 맺었던 한 스포츠 용품 제조회사는 그가 트레이드 되며 소위 가망이 없어지자 설치한 대형광고판을 철거하고 출시 예정이던 그의 이름을 딴 농구화(예를 들어 '에어 조던'과 같은)의 생산 계획을 바로 백지화했다.

마이너는 '제 2의 조던', '베이비 조던'이란 환호와 찬사를 뒤로 한채 이제 그저 덩크슛 잘하는 선수로만 팬들의 기억에 남게 된 것이다.

케니 워커의 NBA 행로도 참으로 불운의 연속이었다. 그가 86년 드래프트 출신(뉴욕에 의헤 1라운드 5순위)이라 그해 입단 동기들의 불운과 함께 늘 등장했지만 그가 리그에 있었던 때는 항상 가능성만 있었던 선수로 남았다.

SF/PF를 동시에 볼 수 있고 엄청난 운동능력을 자랑했지만 계속되는 부상과 NBA에서의 적응 실패는 팀에겐 잘못 뽑은 드래프트로 생각되어졌고 90~91시즌 종료 후 웨이버로 공시되고 말았다.

유럽리그를 비롯한 해외리그를 돌다 다시 지난 95~96시즌 워싱턴의 유니폼을 입고 NBA에 돌아왔었지만 결국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그저 그런 선수로 은퇴를 하고 만다.

조던과 함께 리그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도미니크 윌킨스도 결국 선수 생활의 말년은초라했다. 애틀랜타의 간판선수로 활약하던 도중 LA 클리퍼스로 트레이드되는 사건을 겪은 후 그는 보스턴, 센 안토니오, 올랜도를 떠돌며 소리소문 없이 은퇴를 했다.

최근 전 소속팀인 애틀랜타에서 그의 등번호인 21번을 영구 결번 시키긴 했지만 그가 NBA에서 뛰면서 이룬 성과에 비하면 참으로 불운한 선수라 생각된다.

이들외에도 아이제아 라이더의 경우도(물론 그의 행실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현재 팀내에서 존재가 미미하고 디 브라운의 경우도 덩크슛 챔피언에 오른 후 쏟아진 기대에 비하면 별로 좋은 활약을 못 보인채 보스턴 유니폼을 벗었다.(현재는 올랜도 소속)

가장 최근의 우승자는 다름아닌 코비 브라이언트와 빈스 카터. 두 선수가 앞의 예처럼 불운한 선수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조던과 같이 될런지 아직 점치기에는 이르다.(물론 둘다 앞으로 리그를 이끌고 나갈 스타임은 분명하다.)

두선수 모두 마이너나 워커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 조던과 같은 모습으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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