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어야 새롭다…경계 허무는 학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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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교양과목 ‘인문학적 건축학’ 수업을 맡은 서현(가운데) 교수가 학생들과 건축물에 담긴 시대·역사적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경록 기자]

“프랑스 롱샹성당에는 일반 십자가에 비해 위 부분이 좁은 십자가가 있다. 이상한 비례의 이 십자가를 보니 어떤 감정이 생기는가.” 23일 오전 10시 ‘인문학적 건축학’ 수업을 진행하던 한양대 건축학부 서현 교수가 롱샹성당 내부의 성물(聖物)을 보여주며 물었다.

한 여학생이 “핍박 당하고 억압된 느낌이 든다”고 대답했다. 서 교수는 “비례를 조금 바꿈으로써 억압 받고 억눌린 느낌이 나도록 해 건축물과 더불어 유명세를 갖게 됐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날 수업에서 서 교수는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건축물인 빌라사보아·롱샹성당·라뚜레뜨 수도원의 모습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며 당시의 시대·사회적 배경과 건축물에 투영된 건축가의 정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학기에 처음 개설된 ‘인문학적 건축학’ 수업은 건축학과 인문학을 접목한 강좌다. 서 교수는 “역사와 사회가 건물을 어떻게 규명하는지에 대한 수업”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국회의사당이나 학교가 어떻게 오늘의 모습을 갖췄는지 역사적 배경을 찾는다. 한국의 가족 관계 때문에 예식장이나 아파트가 지금의 형태를 갖게 되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공간의 사용 방식을 통해서 그 시대의 사회를 읽는 눈을 키우게 된다”는 것이 서 교수의 설명이다. 경영학·사회학·법학·음대 등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이 수업을 듣고 있다. 김대원(사회학과 2)씨는 “기존 과목은 한 분야에 대해서만 파고 드는데 융·복합 과목은 다른 분야와 접목해 본질적인 접근에 대한 물음표를 선사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학문과 기술 간의 융·복합 바람이 거세다.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이병민 교수는 “최근 통섭의 요구가 증가하면서 지식의 대통합과 범학문적 접근이 중요해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서비스 사이언스의 발전으로 인문학과 공학이 접목된 창의적 인재가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전공 다른 19명의 교수들이 수업 진행하기도

우리나라 대학들도 학문과 기술 간의 융·복합 연구가 활발하다. 융합교육을 위해 교수들은 학과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융합연구를 위해 2002년 개설된 KAIST(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 및 뇌공학과’는 의학·약학·바이오공학·컴퓨터공학 등 전공이 다른 19명의 교수들이 수업을 한다. 숭실대 ‘유통물류정보 융합사업단’은 경제통상대학·법과대학·공과대학을 포함한 5개 대학 교수진 10명이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건국대는 개별 전공과목 외에 2개 이상 전공 교수가 함께 가르치는 융합과목이 있다. 여러 전공의 학생들이 어우러져 융합 프로젝트 연구를 하기도 한다.

각 대학들은 융합 관련 교과목을 늘리고, 새로운 융합연구에 나서고 있다. 한양대는 2008년 처음 융·복합 6과목을 개설한 이래 해마다 과목 수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상상력과 과학기술’ ‘예술과 감성 과학’ 등 인문과 과학을 넘나드는 과목을 개설했다.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김회율 교수는 “학문 통합교육으로 전공 분야 간 소통을 늘리고 융·복합적 안목을 가진 인재를 키우려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공학인으로서 정확한 의사표현을 하기 위해 작문과 발표, 전공학술영어과목을 가르친다.

동국대는 지난해 5월 경기도 일산에 바이오메디캠퍼스를 개교하고 의학·약학·한의학·생명공학을 하나로 묶어 가르친다. 숭실대는 디지털방송콘텐츠 융합사업단을 만들어 인문학·공학·예술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연구를 하고 있다.

건국대 신기술융합학과 김지인 교수는 “융합교육이 발전하려면 현재 이뤄지고 있는 과제 단위의 단발적 융합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큰 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융합 학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학문으로써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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