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디지털 엑스포에 아날로그 줄세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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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사회부문 기자

29일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상은 온종일 여수엑스포 얘기로 들썩거렸다. 주요 8개 전시관 예약제 폐지를 둘러싸고서다. 이들은 엑스포조직위원회의 ‘갈지(之)자’ 행보를 질타했다. 김홍진씨는 트위터를 통해 “여수엑스포 예약제 없앴더니…‘맙소사!’ 3㎞ 입장 전쟁”이라며 “다시 예약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상당수 네티즌은 지난 27일 환불 소동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일부 ‘준비 안 된’ 관람객들의 경솔한 행동에 모두가 불편을 겪게 됐다는 주장이었다. 트위터 아이디 ‘Ex-Army Doctor’는 “예약제 폐지로 인한 줄서기 대란은 우리나라의 특징”이라며 “다 같이 줄서서, 다 같이 고생하는 길을 택하는 하향 평준화”라고 꼬집었다.

 여수엑스포의 예약제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27일 환불 소동 이후 관람객 모두가 ‘기다림과의 전쟁’을 치르게 됐기 때문이다. 조직위는 당시 전시관을 예약하지 못한 200여 명에게 거센 항의를 받자 예약제를 포기했다. 사전예약 30%와 현장예약 70%를 받아 운영하던 입장 체계가 하루아침에 선착순으로 바뀐 것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이용한 예약제는 ‘스마트(smart, 똑똑한) 박람회’를 표방해 온 여수엑스포의 핵심 서비스다. 갑작스러운 입장 체계 변경은 상상 이상의 혼란을 초래했다. 선착순 입장 첫날인 28일부터 박람회장 전체가 거대한 대기 행렬로 변했다. 이날 관람객이 평일 수준인 4만5031명이었다는 점에서 향후 관람객 몰이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조직위는 29일 “28일 오후부터는 관람객이 분산돼 대기 시간이 짧아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뙤약볕 아래서 기다리던 관람객들의 ‘관람 포기’를 ‘관람객 분산’으로 본 것이어서 되레 빈축을 샀다.

 조직위의 성급한 결정은 아쉬움을 남긴다. “1주일 이상 회의와 관람객 만족도 조사를 거친 결과”라고 해명했지만 여러모로 궁색해 보인다. 조직위는 “이제 와서 예약제를 개선하는 것은 더 큰 혼란만 초래할 수 있다”며 개선책 마련을 포기하고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이 있다. 또 한번의 ‘갈지자’ 행보라는 비난을 듣더라도 묘안을 짜내는 게 아직 초반전에 불과한 엑스포 성공을 위한 길이 아닐까.

최경호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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