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선거의 해, ‘뉴욕의 돈키호테’에게 배운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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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지난해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국 뉴욕의 ‘OWS(Occupy Wall Street,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를 직접 가서 봤다.

 처음 받은 느낌은 ‘자유’였다. 시위 전엔 체조를 했고, 시위할 땐 단조로운 구호 대신 랩을 했다. 중간중간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히스패닉을 위해 에스파냐어로 시위하기도 했다. 형식만큼은 모든 게 섞였다는 ‘멜팅 팟(melting pot)’, 미국다웠다.

 하지만 시위 형식에 비해 구체적인 내용(대안)이 부족했다. 팻말에 적힌 ‘우리는 99%’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란 구호는 모호했고, ‘부시를 저주한다’ ‘푸에르토리코에 독립을!’이란 구호는 황당했다. 시위대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시위대원 저스틴 케네디(27)는 “주장이 모호하고 다양한 게 OWS의 성격”이라면서도 “그런 성격 때문에 시위 동력이 떨어져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지난 17일 오후엔 ‘OWS와 미국 정치’란 주제로 열린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컬럼비아대에 들렀다. 이날 포럼에선 “OWS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시위대원의 주장과 “12월 치를 대선을 앞두고 구체적인 대안을 요구해야 한다”는 학생들의 지적이 부닥쳤다. 포럼을 마칠 무렵 토드 기틀린(69·언론학) 교수가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OWS 시위대가 직면한 질문은 딱 하나, ‘그래서 뭐?(So what?)’다.”

 그 순간, 올 12월 대선을 앞둔 한국이 떠올랐다. 한국 시위는 형식부터 OWS와 닮았다. 어느새 ‘즐기는’ 시위, ‘콘서트형’ 시위가 대세다. 내용을 뜯어보면 더 닮았다. OWS의 핵심 테마인 “99%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라”는 주장은 한국에서도 익숙하다. 최근 OWS가 제기한 “대학 등록금을 낮추고 무상 급식하라”는 주장도 복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그것과 판박이였다. 출구를 찾지 못한 OWS 시위대 일부가 오클랜드 시청에서 성조기를 불태운 것 역시 거센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형식과 내용이 맞닿아 있다면 고민도 닮았을 터다. 현장에서 만난 OWS 시위대원들은 ‘So what?’이란 질문에 답을 내놓는 게 고민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목소리는 무모한 도전에 나선 돈키호테의 외침으로 들리기도 했다.

‘유권자들이여, 정치인을 움찔하게 만들 대안을 요구하라.’ 뉴욕의 돈키호테들로부터 얻은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