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외국환자 100만 명 유치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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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신성식
선임기자

10년 전만 해도 해외 원정 진료가 심심치 않게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한 해 3000~5000명의 환자가 미국·일본 등 의료 선진국에서 수천억원을 쓴다는 거였는데, 한국 의료에 대한 자조(自嘲)가 섞여 있었다. 요즘에는 이런 보도는 거의 없고 외려 외국 환자가 한국을 많이 찾는다는 뉴스가 줄을 잇는다. 한국 의료가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덕분이다. 성형수술에서 시작된 바람이 이제는 암·심장병·장기이식 등 핵심 의료로, 일본·중국 등 인접국 위주에서 중동·중앙아시아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12만 명이 한국을 찾았다. 2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이들은 지난해 1800억원을 한국에서 의료비로 썼는데 원가가 거의 들지 않는 수입이다. 또 괜찮은 일자리를 3000~4000개 창출했다. 관광에도 꽤 많은 돈을 썼을 게다. 해외 환자의 만족도는 상당하다. 미국이 신장이식을 포기한 아부다비의 환자 수술을 한국이 성공하자 중동지역 유력 방송인 알자지라가 주요 뉴스로 소개했을 정도다.

 하지만 연간 100만~200만 명의 외국 환자를 유치하는 태국·싱가포르·인도 등에 비하면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이 단계를 넘어 뛰어다니려면 손댈 게 많다. 얼마 전 장기이식 수술을 받은 중동 환자 가족(6명)은 물어 물어 관광과 쇼핑을 했다고 한다. 일대일 서비스를 원했는데 이게 안 되자 불만을 터뜨렸다. 서울 강남의 한 병원장은 “중동이나 러시아 부호 환자들은 스파 딸린 레저시설에서 특급 서비스를 받고 싶어하지만 그럴 여건이 안 돼 안타깝다”고 말한다. 의료 따로 관광 따로다. 특급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고 쇼핑에 돈을 쓰려고 하지만 여건이 따르지 못한다.

 얼마 전 30대 브로커가 일본인 노부부에게 병원 소개비로 7억원을 가로챈 사건이 있었다. 외국 환자가 늘면서 이런 브로커들이 활개친다. 여행 가이드들이 성형외과·한의원 등에 환자 소개비조로 진료비의 30~40%를 요구한다. 이런 가이드는 블랙리스트에 올려 단호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 국내 보험회사들이 해외 환자를 유치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고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의료사고 배상보험 가입 확대, 아랍어 의료관광통역사 육성, 한국 의료의 현지 홍보 확대 등의 지원책도 절실하다. 병원에 건전한 자본이 들어가 해외 환자용 시설과 인프라를 깔도록 길을 틀 필요가 있다. 이런 것들이 딱딱 맞아 들어가야 ‘해외 환자 100만 명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