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꼬고, 졸고 하던 아이들 … 또래가 수의 입고 들어오자 고요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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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4일 오전 9시30분 서울남부지방법원 306호 법정. 짧게 줄인 교복 치마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여학생, 한쪽 귀에 피어싱을 한 남학생 등 33명의 고등학생이 법정에 우르르 들어왔다. 그러나 이들은 피고인석이 아닌 방청석에 앉았다. 남부지법이 강서교육지원청·강서경찰서와 함께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마련한 법정 방청 행사에 초청됐다. 선도가 필요한 학생들에게 실제 소년 재판정을 방청하게 해 학교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주자는 취지였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 남부지법 소년 형사사건 전담재판부 주채광(41) 판사가 20분 일찍 재판장에 들어와 학생들에게 형사재판 절차를 설명했다. 방청석에 앉은 학생들은 다리를 꼬고 떠들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잠을 자기도 했다. 하지만 10시 ‘진짜 재판’이 시작되고 연두색 수의를 입은 앳된 피고인 2명이 들어오자 방청석은 순간 고요해졌다. “이거 진짜야”라며 놀라는 학생들도 보였다. 피고인석에 앉은 김모(15)군과 이모(14)군은 지난 3월 주차된 승합차를 훔쳐 타고 차 안에 있던 신용카드를 사용한 혐의(특수절도)로 구속 기소됐다. 검사가 피고인 진술서와 범행 증거 사진 등을 실물 화상기를 통해 스크린에 비추자 학생들은 이를 유심히 지켜봤다. 같은 반 친구를 폭행해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김모(17)군은 “나보다 어린 애들이 저렇게 법정에 선 것을 보니 마음이 무겁다. 화가 나도 잘 참아야겠다”고 말했다.

 모든 학생이 김군처럼 진지하게 재판을 지켜본 것은 아니었다. 휴대전화를 끄라는 안내를 따르지 않고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진 학생들 때문에 법원 관계자들이 애를 먹기도 했다. 남부지법 관계자는 “ 이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느낀 바가 있어 법정에 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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