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치히터] 1950년 6월 25일...

중앙일보

입력

1950년 6월 25일. 이 날 새벽 4시를 기해 북한 인민군이 38선 전역에서 남침을 시작했다.

때마침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에서는 전국학도체육대회 2일째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야구장에서는 대학부 야구 서울상대와 성균관대의 연장 연속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전날 연장11회까지 1대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처리되었다가 이날 12회부터 다시 지속된 경기였다.

당시 서울상대와 성균관대학은 대학야구의 최고라이벌이었다. 1년 전인 1949년만해도 두 팀이 각종대회에서 3차례 격돌, 성균관대학이 2승 1패로 앞섰다.

4월에 열린 봄철대학야구 연맹전(봄리그)에서는 성균관대학이 4대3으로 이겼으나 9월에 열린 제4회 대학야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는 서울상대가 2대1로 이겨 우승했다. 10월에 열린 제1회 학도체육대회에서는 1회전에서 만나 다시 성균관대학이 4대1로 승리했다.

1950년대 들어와서는 이날 6월25일의 대결이 첫 대결이었다. 서울상대에는 경남중의 에이스이자 중학야구 최고의 스타 장태영을 비롯해 같은 경남중 출신의 황기대, 박정표, 대구상업 출신의 김용일, 광주서중출신의 김의석, 경기중 출신의 노대건, 인천공업출신의 김재복 등 이 해 청룡기 대회출신의 스타들이 줄을 이었다.

대회 첫날인 24일 대학부1회전에서 만난 두 라이벌은 장태영(서울상대)과 이팔관(성균관대학)을 에이스로 내세웠다. 두 사람은 같은 부산출신으로 중학시절 청룡기 부산예선에서 한번 대결한바 있는 사이였다. 이런 경기라 스탠드는 관중들로 꽉 들어찼다.

서울상대는 4회초 내야수실책으로 출루한 황기대를 2사후 6번 김재복이 좌전안타로 불러들여 귀한 선취점을 얻었다.

성대는 4회말 반격에 나서 대타 김정환이 우월2루타를 치고 나간 뒤 2번 정지철은 4구를 골라 무사 주자 1.2루의 좋은 찬스를 만들었다. 여기서 1점을 뽑아내 경기는 1대1 동점.

이어 날이 저물자 경기는 일몰 서스펜디드 경기로 6.25 당일 11시 연장 12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스탠드 곳곳에서는 '3.8선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얘기들이 돌았다.

이를 확인하듯 야구장 스피커에서는 휴가장병들은 서둘러 군부대로 복귀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야구장 밖에서도 휴가병들의 부대복귀를 외치는 군부대차량들의 외침이 크게 들렸다.

이런 중에서도 경기는 계속되어 연장12회에 서울상대가 결승점을 뽑아냈다. 2사주자 2루에서 이날의 스타인 9번 유두현이 결승좌전안타를 때려낸 것.

이 경기를 끝으로 한국아마야구는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