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돈희 숙명여고 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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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숙명여고 이돈희(60) 교장이 ‘숙명’과 함께 한 시간이다. 이 교장은 1968년 숙명여중을, 1971년 숙명여고를 졸업했다. 1988년부터 숙명여고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다가 2007년 교장으로 취임했다. “교문을 지날 때면 아직도 설렌다”는 이 교장은 인생의 절반을 ‘숙명’에서 보냈기에 누구보다 학생들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 그가 교장으로 취임해 가장 먼저 한 일도 여고생의 편의를 고려한 자기주도학습실을 만든 것이다.

-자기주도학습실을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나.

“2007년 당시에는 숙명여고 인근 학교 대다수가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진행하거나 딱딱한 나무책상에 앉아 공부했다. 하지만 30여 년 전 나의 고교 시절을 떠올려보니 그런 곳에서 공부가 잘된 것 같지 않더라. 여고생들은 안락한 공간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큰 교실 대신 4개의 작은 교실을 개조해 자기주도학습실로 꾸민 이유다. 독립된 책상과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조명과 사물함·발마사지기 등을 갖췄다. 여학생들이 겨울에 추운 곳에서 떨면서 공부하지 않게 마룻바닥에 열선을 깔았다. 사설독서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진학실적이 좋은 게 환경 덕만은 아닐 것 같은데.

“환경이 좋다고 진학실적이 좋을 순 없다. 교사들의 열정과 학생들의 노력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내가 교사 시절에는 50분 수업을 위해 한 달을 준비했다. 수업 중간 중간에 써 먹을 농담까지 외웠고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와 동시에 교실에서 나왔다. 지금 숙명여고에서 근무하는 모든 교사도 이런 열정으로 수업에 임한다. 수업 준비는 기본이고 시험 출제기간이면 자정이 돼서야 교무실 불이 꺼진다. 학생들이 평소에 좋은 시험문제를 많이 풀어 봐야 실제 수능에서도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어려운 시험이라 소문난 것도 이런 것과 관련 있나.

“기본이 갖춰진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축구선수나 농구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가. 달리기다. 수업과 시험이 학교의 기본이다. 왜 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려드나. 학교 수업이 재미없어 도움이 안 되고, 내신시험은 대충 교과서를 암기해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숙명여고 신입생 30% 이상은 중간고사가 끝나면 울고불고 한다. 문제를 시간 안에 다 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3년간 시험을 치르다 보면 자연스레 문제해결 및 시간분배 능력이 길러진다.”

-진학결과 말고도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

“동아리 활동이다. 현재 68개 동아리가 개설돼 있다. 동아리 활동은 진로교육인 동시에 최근 증가하고 있는 입학사정관 전형에 대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1학년 때부터 자신의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게 돕는다. 학교에서 제작한 창의체험활동노트를 모든 학생에게 나눠줘 3년간 자신의 진로에 맞춰 기록해나가도록 유도한다. 학년 초마다 진행하는 상담을 통해 학생이 쌓은 활동을 점검하고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지도한다.”

-진학팀을 따로 만들지 않는다는 게 의아하다.

“고3 담임 전체가 진학팀이다. 불필요한 학내 경쟁을 막기 위해서다. 어떤 학교는 자신의 반 학생들의 진학실적을 높이기 위해 동료교사에게 정보 공개를 꺼린다고 하더라. 하지만 우리 학교는 아니다. 고3 담임들은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 원서작성 과정에서 어떤 학생이 어느 학교·학과에 원서를 낼지를 함께 고민한다. 또 20년 넘게 축적한 진학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점수에 A대학에는 붙고 B대학엔 떨어질지 가늠할 수 있다.”

-숙명과 맺은 30년, 숙명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강남은 사교육 천국이다. 그러나 ‘숙명에 들어오면 학교 수업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 실제로 많은 학생이 사교육보다 공교육 덕분에 대학에 합격했다. 현재 265석인 자기주도학습실 좌석을 고3 학생 전원이 사용할 수 있는 600석 규모로 늘리는 게 최우선 목표다. 학생들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게 선생이자 이 학교 선배로서 숙명여고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글=전민희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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