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大入口·까치山·올림픽公園 … 중국인이 알아볼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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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호선 내 노선도. 까치산역은 ‘까치山’, 신정네거리역은 ‘新亭네거리’라고 적혀 있다.(사진 위) 서울대입구역은 ‘서울大入口’라고 돼있다.(사진 아래)

지난 23일 일본인 니시카와 도모히로(西川友宏 ·24)는 을지로입구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탔다가 당황했다. 일본어 표지판이 잘돼 있다던 관광안내도의 설명과 달리 지하철 노선도에 한자와 한글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九老디지털團地(구로디지털단지)’라고 적어둔 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에서 만난 중국인 거우리쥔(苟利軍·32)은 “처음에 탔던 지하철 노선도엔 ‘?林匹克公?’(올림픽공원)이라고 나왔는데, 이 전동차에선 그런 단어가 안 보인다”고 말했다. 그가 탄 열차에는 대신 ‘올림픽公園’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것도 본토 중국인이 사용하는 간체(簡體)가 아닌 번체(繁體)로 적혀 있었다.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 외국어 표기를 두고 외국인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시는 2009년부터 민간인으로 구성된 지명위원회 자문을 거쳐 역명과 외국어 표기를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하철 역과 전동차 안의 외국어 표기는 한마디로 ‘중구난방’이다. 지하철 2호선 잠실나루역의 경우 ‘잠실나루·Jamsillaru·蠶室나루’라고 적혀 있다. 영어권 국가에서 온 외국인이 아니면 ‘잠실나루’라고 읽지 못할 수 있다. 서울대입구역은 ‘서울大入口’라고 적혀 있다. 중국인을 위한 표기라면 서울을 ‘首?’, 일본인을 위한 표기라면 ‘ソウル’라고 각각 적는 게 올바른 표기다.

 지하철 1~4호선을 맡고 있는 서울메트로 측은 “현재 외국어 표기는 영어만 있다고 보면 된다. 한자 표기는 일본·중국인을 배려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는 만큼 한자도 병기하는 게 맞다고 판단해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2002년 로마자 표기 사전을 만들었지만, 일본·중국어 표기에 대한 지침을 따로 마련하진 않았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문제를 알고 있다. 그는 지난달 “도로명·지명·역명 등의 외국어 표기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관광공사는 “문화체육관광부·국립국어원 등과 논의해 내년까지는 외국어 병기에 관한 정식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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