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국가대표 출신 금감원 간부…저축은행서 2억 부정대출 해외 잠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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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저축은행에서 수억원을 빌린 금융감독원 간부가 해외로 잠적했다.

 22일 금감원에 따르면 전 대구지원 부지원장인 오모(51)씨는 올 초 대구 C저축은행에서 2억원을 빌린 뒤 이자를 내지 않은 채 캐나다로 출국했다. 오씨는 대구지원에 앞서 부산지원에 근무하던 지난해에도 경남 지역 B저축은행에서 수천만원을 빌린 뒤 이자를 연체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B저축은행은 지난해 퇴출됐다.

 금감원은 올 초 오씨의 부정 대출이 의심된다는 검찰 통보를 받고 자체 조사를 거쳐 지난 3월 오씨에게 무기한 정직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당시 저축은행과 관련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오씨를 수사하다 부정 대출 혐의를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씨는 징계 직후인 지난 3월 금감원에 사표를 냈으나 수리되지 않았다. 이후 오씨는 가족이 거주하는 캐나다로 출국했다. 익명을 원한 금감원 관계자는 “캐나다를 거쳐 현재는 말레이시아에 체류 중이고, 금감원 직원과 계속 e-메일을 주고받고 있는 상태라 잠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며 “개인 사정으로 이자를 제때 내지 못했지만 차입금과 이자를 상환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오씨는 애초 캐나다의 가족에게 생활비를 부쳐주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가 연체되자 다른 저축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씨는 1980년대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농구 선수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 소속으로 뛰다가 은퇴한 뒤 한국은행 직원으로 일했으며, 이후 조직개편 과정에서 금감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업계에서는 오씨에게 연체된 대출이 있는데도 다른 저축은행에서 거액을 추가로 빌릴 수 있었던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금감원 간부라는 직위가 작용하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라며 “특히 저축은행 추가 영업정지가 예고돼 있던 올 초 거액을 빌린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의 대응이 안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은 검찰 통보를 받기 전까지 오씨의 대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도 정확한 대출 금액과 시점, 연체를 했음에도 더 큰 금액을 빌릴 수 있었던 이유 등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일이라 일일이 확인하기가 사실상 어렵고, 검찰과 본인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라며 “검찰이 출국금지를 취한 것도 아니어서 해외 출국을 막을 방법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검찰은 금감원 직원 상당수가 이번에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관련 비리에 연루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저축은행 사태 이후 10명 이상의 전·현직 금감원 직원이 검찰에 구속됐다. 금감원은 이후 금융회사로의 낙하산 취업을 금지하고 재산등록 대상을 확대하며 ‘재발 방지’를 다짐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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