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봐야 실력이 늘지 … 김시진의 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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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목동야구장에서 롯데와의 경기가 열리기 전 김시진 넥센 감독이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아래 사진들은 넥센이 경기에서 이겼거나(왼쪽 3장) 타자들이 홈런을 쳤을 때 김 감독이 선수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는 모습. [임현동 기자]

“저도 우리 팀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습니다.”

 2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만난 김시진(54) 넥센 감독은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넥센의 돌풍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라고 묻자 “아직 4분의 1밖에 시즌을 소화하지 않았다. 지금 분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가 힘들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두 번 이기다 보니까 자신감이 붙었다고 봐야겠지요. 지난해에 느끼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힘이 생겼다고 할까요. 후반에 점수를 낸다는 것 자체가 포인트입니다.”

 올 시즌 프로야구팬을 가장 놀라게 하는 팀은 넥센 히어로즈다. 넥센은 15일부터 20일까지 롯데와 삼성을 상대로 6연전을 싹쓸이하며 2위로 뛰어올랐다. 하위권으로 평가받았던 팀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김시진 감독은 “다 선수들과 코치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선수 내주고, 성적은 내려가고=김 감독은 2009년 부임 후 세 시즌을 스트레스 속에 보냈다. 2009년 60승으로 6위에 머물렀고 2010년엔 7위로 내려갔다. 성적만 떨어진 게 아니라 구단 사정으로 매 시즌 주전 선수를 다른 팀으로 떠나 보내야 했다. 결국 지난해 최하위의 수모를 맛봐야 했다.

 그냥 주저앉으라는 법은 없었다. 떠나간 선수들의 빈 자리를 새 얼굴들이 메웠다. 김 감독은 “다른 팀 같으면 기다려주지 않았을 선수들이 우리 팀에선 기회를 얻었다. 못한다고 바로 빼면 자신감이 없어 더 못했을 텐데 우리는 믿고 기용했다”고 설명했다.

 때마침 구단도 선수 팔던 이미지를 씻고 투자에 나서기 시작했다. 넥센은 지난겨울 FA 이택근과 메이저리그 출신 김병현을 데려와 전력을 보강했다. 김 감독은 “둘이 왔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박병호를 비롯해 장기영·정수성 등 기존 선수들이 잘하니까 그 영입이 플러스 알파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패해라. 그러면 더 크게 얻는다=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투수에겐 볼넷을 내줄 바엔 차라리 안타를 맞으라고 주문하고, 타자들에겐 적극적으로 뛰어 한 베이스를 더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실패를 하면서 실력이 는다. 도루하다 처음 2m 앞에서 아웃됐다면 다음엔 1m 앞에서 죽는다. 그 다음에 성공하면 자신감이 생겨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넥센이 승승장구하자 팬도 많이 늘어났다. 특히 LG와의 경기는 ‘엘넥라시코’로 불리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 감독은 “우리는 서울의 막내 구단이다. 두산·LG와 비교하면 팬들이 적다. 그래서 LG전은 솔직히 이기고 싶다. 그동안 아쉬운 게 성적과 팬이었다. 요즘은 평일 목동구장을 가득 채우고 싶은 게 내 마음”이라고 했다.

 앞으로 넥센은 주춤할 수도 더 잘나갈 수도 있다. 김 감독은 ‘넥센이 어디까지 전진할 수 있을까’라고 묻자 “그거 알면 돗자리 깔아야죠. 지난 경기는 잊고 오늘 경기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자신감은 있었다. 그는 “시련이 오겠지만 이런 경기를 자주 하면 빠르게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SNS 대문에는 ‘꿈이 현실로’라는 말이 달려 있다. 김 감독은 “내 방에도 같은 문구가 벽에 걸려 있다”고 했다. 그에게 꿈이 무엇을 뜻하는지 물었다. “꿈이야, 감독 잘하고 있다고 인정받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려면 성적을 내야죠.” 그는 “마음 한구석에 욕심은 있다. 지금은 표현을 못할 뿐”이라며 웃었다.

김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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