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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가 보여줘야 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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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

정치적 색채가 뚜렷하지 않아 관리형이라 불린다. 황우여 대표 말이다. 언짢을 수도 있겠다. 명색이 집권여당의 대표인데 ‘관리’란 수식어가 붙어다니니. 하지만 그건 스스로 쌓아온 거다. 보스형 카리스마도, 보스에게 직언할 강단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별명 ‘어당팔’(어리숙해 보여도 당수(唐手)가 팔단)이 그에게 붙여진 정치력의 상징이다.

 그는 사석에서 “오늘 내 것을 가지기 위해 칼을 빼 드는 것보다 내일 다시 얘기하는 게 낫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자신을 비난하는 이의 면전에서도 반박하지 않고 “허허허”하고 마는 게 그다. 싸우는 걸 싫어해 부부싸움 한번 못해봤다고 한다. 그래서 ‘화합형이다’ ‘온건하다’는 평이 따라다닌다. 그가 공격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정몽준 의원이 그를 겨냥해 ‘환관’이란 표현을 썼다. 그때 그는 “신경 안 쓴다”며 “정 의원은 사내대장부다”고 했다. 역설적으로 반응하는 전형적인 어당팔식 공격이다.

 그런 그가 대선 정국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 당장 8월에는 대선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한다. 그는 2007년 사무총장으로 경선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땐 사무총장이었고 지금은 대표다. 더구나 당시는 팽팽한 싸움이었지만 현재로선 일방적인 게임이다. 심판 역할이 더 까다로워 보인다. 비박(非朴)계 주자들이 그를 비난하는 건 결국 “당신은 박근혜 편을 들 게 아니냐”는 거다. 경선이야 그렇다 치고. 대선은 어떡할 건가. 대선이란 빅 게임에서 목숨을 걸고 달려올 야당의 험한 공세를 관리식 대처로 막아낼 수 있을까.

 22일 오전 그를 만나 물어봤다. 그도 자신에 대해 고민이 깊은 듯했다. 그는 “갑자기 스타일을 억지로 바꿀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관리형 대표로선 대선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죠”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 흐르듯이 하면 돼요”라고 했다. 이어 “주자들을 만나고 있는데 협의하면서 그때 그때 맞춰가면 무리 없이 경선을 치를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예상했다. 또 “대선은 국민을 보고 가야죠. 대선이란 오디션에서 국민을 보고 보여줄 것을 보여줘야지, 야당과 내부를 쳐다보고 해선 안 되는 거죠”라고 했다. 누굴 만나도 그의 말투는 언제나 존댓말이다.

 틀리지 않은 지적이다.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나타내 보여주느냐다. 당장 해야 할 건 박근혜 전 위원장 편을 든다는 인식을 불식시켜야 한다. 그를 원내대표에 이어 당 대표로 세운 세력이 박근혜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박 전 위원장에게도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대표가 돼야 한다.

 스타일은 쉽게 변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어당팔식 정치의 업그레이드는 필요하다. 매사 좋은 게 좋은 거다는 식이라면 적은 생기기 않을지라도 팬은 안 생긴다. 팬 없는 정치인은 힘이 없다. 필요하면 언제라도 확신과 강단을 보여줘야 한다. 대선 후보가 확정된 날, 명실상부하게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표가 돼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