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재건축 거지…4년새 4억원 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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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일ㆍ최현주기자]

재건축사업이 거의 실종되면서 재건축 추진 아파트를 갖고 있는 사람 상당수는 ‘하우스 푸어’로 전락했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는 유주택자이지만 집값 하락과 대출이자 부담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을 뜻한다. 재건축 주민들은 자신들을 자조적으로 ‘재건축 거지’라고 말한다.

이들은 2000년대 초·중반 집값 급등기 때 개발 이익을 기대하고 재건축에 뛰어들었다 발목을 잡혔다. 재건축은 요원한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던 집값은 곤두박질쳤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 사는 ‘재건축 하우스 푸어’ 3명을 인터뷰했다. 개포동 주공2단지 47㎡형(이하 전용면적)에 사는 김모(55·여)씨와 대치동 은마 전용 77㎡형에 투자한 유준상(55)씨, 잠원동 한신 2차 전용 52㎡형 거주자인 이모(43·여)씨다.

-언제 재건축 아파트를 샀나.
“(김)(이) 외환 위기를 벗어나면서 재건축 바람이 불고 집값이 들썩이던 2002~2003년이다. 강남의 번듯한 새 아파트에 입성할 목적이었다.”

“(유) 2008년 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규제가 대폭 풀리는 것을 보고 재건축이 ‘돈’이 될 것으로 생각됐다. 전세를 끼고 투자했다.”

-길게는 10년 넘게 재건축이 제자리 걸음이다.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나.
“(김) 당국의 과도한 규제 탓 아닌가? 정부는 정부대로, 서울시는 서울시대로. 소형을 많이 지어라, 임대를 늘려라 등. 규제가 심하다.”

“(유) 당국이 재건축 시장에 너무 깊숙이 개입해 이래라 저래라 한다. 그냥 시장에 맡겨 둬야 하는데….”

“(이) 주민들간 이견이 크다. 주민 1000여 명이 각자 원하는 바가 달라 의견 통일이 어렵다. 의견이 모아지지 않으니 사업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사업 장기화에 따른 어려움은.
“(김) 집이 낡을 대로 낡았다. 베란다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고 바람이 세게 불면 창틀이 떨어질 것 같아 불안하다. 전세를 주고 다른 집으로 전세를 가고 싶어도 낡은 집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다.”

“(이) 이사온 뒤 9년이 지나면서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 둘이 이제 중학생이 됐다. 각자에게 방을 주고 싶은데 집이 좁아 그러지 못한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 재건축이 끝날 것으로 기대했는데….”

-집값은 많이 올랐나.
“(김)(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많이 빠지긴 했지만 구입했던 거의 10년 전보다는 꽤 올랐다.”

“(유) 나처럼 2000년대 중후반에 투자한 사람들은 ‘상투’를 잡은 꼴이다. 4년 전에 전세 2억5000만원을 끼고 4억원 대출 받아 10억5000만원에 샀다.

그동안 대출이자만 매달 200만원 정도씩 1억원 가량 나갔다. 지금 시세는 3억원 가까이 빠진 8억원으로 4억원 정도를 허공에 날린 셈이다.”

-어떻게 할 계획인가.
“(김) 지금은 살기 불편하고 힘들어도 재건축이 될 때까지 살 생각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넓은 새 아파트에 살고 싶은 꿈을 이루고 싶다.”

“(유) 하루 빨리 재건축이 돼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손해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이) 재건축을 포기했다. 지쳤다. 99㎡(옛 30평)대 일반 아파트로 이사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집이 안 팔린다. 집을 내놓은 지 벌써 1년이 지났는데.”

-당국에 바라는 것은.
“(김) (유) 소형주택 비율 등 세세한 부분까지 과도한 간섭을 삼갔으면 좋겠다. 법 테두리 안에서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재건축할 수 있게 말이다.”

“(이) 재건축에는 더 이상 미련이 없고…. 정부가 대출 규제를 풀든지 해서 얼른 집이 팔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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