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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빚, 이제 내려놓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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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1980년대 대학 캠퍼스는 처절했다. 하루가 멀다고 최루탄이 교정을 덮쳤다. 그 최루탄을 뚫고 화염병이 여기저기서 터져 캠퍼스는 불바다가 되곤 했다. 그 시대의 대학생은 크게 나눠 두 부류였다. ‘운동’에 뛰어든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시위에 적극적이었던 입학 동기가 어느 날 사라졌다. 친구들은 그가 왜 안 보이는지 묻지 않았다.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현장 투신. 이렇게 자취를 감춘 동기는 서서히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다.

 졸업을 하면서 친구들은 흩어졌다. 기업체에 취직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에 매달리는 이도 있었다. 개인 사업을 시작한 친구도 있었다.

 사회에 적응해간 졸업생들은 동창회에서 만나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대화는 꼭 한번쯤은 중단됐다. 누군가가 꺼낸 한마디 때문이었다.

 “○○○는 뭐 하는지 알아?”

 학교에서 사라졌던 그 친구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모두 말없이 술잔만 기울였다.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이들은 마음 속에 크든 작든 빚을 담고 살았다. 청춘을 바쳐 독재정권에 저항한 동료에 대한 부채의식이었던 셈이다.

 이번 19대 총선 비례대표 선거에서 통합진보당에 간 220만 표(득표율 10.3%) 중 일부는 이런 마음의 빚에서 나온 것이다. 이 사회에도 건전한 진보세력이 필요하다는 소망이 담긴 표였다.

 이렇게 스스로 빚을 떠안았던 이들이 이번 선거를 끝으로 “이제 빚을 내려 놓는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통진당의 비례대표 경선 부정을 둘러싼 당권파의 행보를 보고 말문이 막힌 이들의 절교선언이다.

 통진당 당권파는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괴물’이 됐다. 시대착오적인 주사파의 망령에 휩싸여 고립무원을 걷는 패거리로 전락했다. 이들이 외치는 ‘진보(進步)’는 앞으로 나가는 걸음이 아니다. 자신들만 옳다고 주장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절차를 무시하고, 부정도 서슴지 않는 무리를 진보라고 할 수 없다.

 진보세력에 표를 준 유권자가 바란 건 ‘실력 있는 진보’였다. 높은 도덕의식을 갖고, 절차를 준수하며, 민주적 소통을 중시하는 ‘멋진 진보’ 말이다. 당권파는 이런 믿음을 산산이 부수었다. “더 이상 그들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지지세력이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후련하지 않다. 20여 년간 짓눌렀던 빚을 청산했는데도 오히려 한숨은 커진다. 진보의 괴멸은 사회의 치우침을 불러온다는 걱정 때문이다.

 아직 기회는 있다. 당권파가 죽고자 해야만 진보 전체에 다시 피가 돌 수 있다. 좌우의 날개가 있어야 새가 날듯, 사회도 보수와 진보라는 두 엔진이 작동해야 앞으로 나아간다. 이 사회가 균형을 이뤄 살 만한 곳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안타깝게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