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하는데 대학 졸업장은 있으나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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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그램 이상윤 대표는 오락실을 집처럼 드나들던 아이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오락실을 떠나 수험서를 들고 공부할 때,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직접 게임을 만들기 시작해 고1 때인 88년 국내 최초의 메가 게임 ‘대마성’을 개발했다.

선생님의 불호령이 아무리 무서워도 뿅뿅의 매력을 따라올 순 없었다. 몇 번이나 엄마 손에 잡혀 집으로 끌려 갔지만 오락실 앞을 그냥 지나치기란 참새가 방앗간 지나치기보다 어려운 일. 그렇게 동전 하나만 생기면 오락실로 조르르 달려가던 코흘리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1백원 동전 하나로 하루 종일 오락실을 지키는 고수가 되어 주인 아저씨 눈총을 한 몸에 받았던 그 아이들 대부분은 지금 의젓한 사회인이 되었을 게다.

판타그램 이상윤 대표(30)도 그렇게 오락실을 집처럼 드나들던 아이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오락실을 떠나 수험서를 들고 공부할 때,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직접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1 때인 88년 국내 최초의 메가 게임 ‘대마성’을 개발했다.

한양대 수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2학년 때 학교를 휴학하고 아예 게임제작사를 차렸다. 중학교 시절부터 함께 게임을 만들던 다섯 명의 친구들은 모두 날고 기는 게임 프로그래머가 됐고, 현재 판타그램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지난 해 말 이상윤 대표가 이끄는 판타그램은 3년간 30억원을 투자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킹덤 언더 파이어’를 내놓았다. 전세계 14개국 언어로 현지화 작업을 마쳤고, 독일·대만에 이어, 1월 8일 미국과 유럽 등 전세계 30여 개국에 출시됐다.

‘킹덤 언더 파이어’의 해외 진출은 미국 5대 게임 유통사 중 하나인 ‘GOD’와 북미 지역 수출 계약을 맺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해외 언론은 벌써부터 ‘검과 마법의 세계를 동경하는 사람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흥미진진한 게임’(英, PCGAMER 12월호)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게임할 때의 몰입도나 그래픽은 기대 이상이지만, 프로그래밍의 완성도 면에서는 아직 만족할 수준이 아닙니다.”

이상윤 대표는 “‘디아블로2’ 같은 게임은 테스트 기간만 1년여를 투자해 완성도를 높인다”며 “작은 오류 때문에 게임의 장점이 가려질까 걱정”이라고 말한다. 이대표가 스스로 매긴 ‘킹덤 언더 파이어’의 점수는 ‘75점’. 후반 작업에 충분히 공을 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3년을 공들인 ‘작품’에 주는 점수 치곤 박하다. 하지만 “몇 번 하다보면 게임 속에 푹 빠지게 만드는 중독성이 있다”고.

막대한 자본을 들이고 충분한 개발 기간을 거쳐 나온 외국 게임들이 부럽지만, 지금까지 출시된 게임은 이대표의 경쟁 상대가 아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게임을 만들겠다”는 것이 이대표의 꿈이다.

‘킹덤 언더 파이어’는 지난 해 ‘대한민국 게임대상 2000’에서 PC게임 부문 최우수상과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영상물 등급위원회로부터 가정용 게임부문 ‘2000 올해의 좋은 영상물’로 선정됐다. 올해는 세계 시장에서 1백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출시 이전에 이미 50만 장 이상의 판매계약을 체결했으니 막연한 목표는 아니다.

판타그램은 올해 출시를 목표로 3D 롤플레잉 게임 ‘샤이닝 로어’를 개발 중이다. 이상윤 대표는 “지금까지의 어떤 게임과도 다른 독창적인 게임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가 게임개발자를 꿈꾸는 닮은 꼴 후배들에게 남기는 한 마디.

“앞으로는 혼자서 게임을 만들 수 없습니다. 구조화 시키고 짜임새 있게 게임을 완성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죠. 소프트웨어 공학 쪽에 관심을 갖고 공동 작업을 통해서 그런 능력을 키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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