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선두, 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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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상욱이 5번 홀에 이어 6번 홀에서 잇따라 보기를 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플로리다 AP=연합뉴스]

“빨리 때려! 그냥 쳐!”

 재미동포 케빈 나(29·한국이름 나상욱)가 어드레스를 할 때 갤러리가 가끔씩 소리를 쳤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슬로 플레이로 언론에서 맹비난을 받았던 나상욱은 4라운드에서는 팬들의 야유에 혹독하게 당했다. 광대까지 나타났다. 광대는 6번 홀에서 보기를 한 케빈 나에게 “너에게 돈을 걸었으니 무너지지 않는 게 좋을 걸”이라고 이죽거렸다. 빨리 치려 해도 팬들의 야유 때문에 어드레스를 풀어야 할 때도 있었다. 13번 홀에서 공을 물에 빠뜨렸을 때는 “나나나나나 굿바이”라는 노래도 나왔다.

 결국 케빈 나는 팬들의 방해에 KO 당했다. 14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폰타베드라비치의 소그래스 TPC에서 끝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다. 2타 차 선두로 경기를 시작한 그는 최종일 4타를 잃어 최종합계 8언더파 7위로 처졌다. 우승자는 13언더파를 친 매트 쿠차(미국)다.

 그는 경기 중 팬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우승 가능성이 사라진 뒤에는 동반 경기자인 쿠차의 템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뛰어다니면서 플레이를 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비난했다. “나는 갤러리에게 당할 만했다. 나는 더 빨리 경기해야 한다. 새 스윙에 적응이 안 돼 마음속에서 (예전 스윙을 하려는) 자신과 싸우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커다란 압박감 속에서 경기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팬들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도 털어놓았다. “솔직히 이것이 공정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하겠다. 그들은 (나처럼) 평범한 선수는 가만두지 않았다”이라고 말했다. 스타급 선수들이 슬로 플레이를 했다면 이 정도로 몰아치지는 않았을 거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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