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타임스 "레임덕 신드롬이 한국의 걸림돌"

중앙일보

입력

LA타임스 지난해 12월 27일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레임덕 현상을 겪고 있으며, 정치.경제 개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특히 김대통령이 민주주주의는 믿고 있지만 스스로 민주적이지는 않다며 지나치게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된 한국의 정치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본지 1월 5일자 6면 권영빈 칼럼에는 이 기사에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은 기사 전문.

'레임덕 신드롬이 한국의 걸림돌'

-마이클 파크스, 그레고리 F 트레버턴

'위기' 라는 말은 자주 남용되는 말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금 이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할만한 5%대의 성장율과 실업율을 보이고 있는 이 나라가 위기라고 표현한다면 다른 나라들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 소비자들이 1997~8년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불황이 임박해 있다고 믿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2002년에 대선이 있어 임기가 아직도 한참 남은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거의 레임덕 현상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심지어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서도 수면아래에서는 논란이 일고 있고 그의 친구들도 통치력에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부분적으로 김대통령의 문제는 역사는 대통령의 전체적인 성과를 평가하지만 정치는 늘 순간순간의 상황에 좌우되는 것이라는데 있다. 김대통령은 현재의 상황 때문에 국내에서 그다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대북 햇볕정책과 지난 6월 김정일 (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됐다. 오늘의 뉴스는 경제가 회복됐지만 구조개선이 이뤄진 것은 아니며, 북한과의 문이 열렸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성사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 나라는 정치적으로도 정체상태에 발이 묶여있기도 하다.

한국은 경제면에서 할 일이 많다.

이 나라는 다른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경제적 기반이 잘 갗춰져 있고, 무역이나 해외투자면에서도 건실하다.

그러나 정부가 아닌 시장에 의해 경제적 자원을 분배하는 경제 구조조정은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도처에서 '개혁' 을 주문처럼 외치고 있지만 오랜 동안 재벌이라고 불리는 기업집단을 원동력으로 움직여온 개발독재국이었던 이 나라에서 이 주문은 의미가 퇴색해있다.

그리고 정부는 지지 기반을 얻는데도 실패해 구조조정의 각 국면마다 고통을 받는 집단이 새로운 저항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시장원리가 작동하도록 하겠다는 말은 무성하지만 정부가 지금도 자금의 흐름을 쥐고 있다. 은행 개혁에 이미 1천억달러를 쏟아부었다.

만약 대우자동차가 문을 닫고 GM 또는 다른 외국 자동차 회사가 인수를 한다면 이는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현대건설에 계속 자금 지원을 한다면 이는 이 교훈이 사라지도록 하는 일이 될 것이다.

현대의 북한 금강산 관광 사업은 정치적으로는 민감한 사업이었지만 한해에 1억불의 적자가 나고 있다.

정부의 경제 개혁에 대한 신뢰도는 정권 지지층에서 조차도 낮다.

노동자들은 정부가 뭐라고 말을 하든간에 대우를 한국의 깃발을 단 회사로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 문제에서 다음 문제는 약속은 했지만 일정은 잡혀있지 않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이 성사될 것이냐, 안보 문제가 남.북간의 협상 의제에 포함되는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안보 문제는 미국과 협상을 하는 분리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게다가 한국내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냐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는 완전히 호혜적인 협상이 아니라면 최소한 북한의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변화가 선결 요건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낙관주의는 1997년 대선전까지 이 나라를 통치해온, 자신들이 이 진정한 통치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의 많은 사람들의 비관적인 견해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김대통령은 햇볕정책에 대해 잘 설명하지 않아왔고 그가 노벨상을 받게된 두 가지 이유와도 상충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쉽게 됐다.

그는 인권과 북한에 대한 개방적인 정책을 취했다는 이유로 상을 받았다.

그러나 북한의 인권 상황은 열악한데 그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분열돼 있고 노벨상 수상으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욱 인정받고 있다는 식으로 김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과장되게 표현되고 있기도 하다.

또 그는 다른 업적마저도 사라질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있다.

그는 낙후된 남서쪽 지방인 전라도 지역을 처음으로 중앙무대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역적 분리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지난 4월 총선에서 90%이상의 부산 지역 유권자가 야당에 표를 던졌고 전라도 지역에서 비슷한 비율의 유권자가 여당에 투표했다.

투옥과 추방을 경험한 김대통령은 행정가로서의 경험은 없는데 그는 전 정권에서 소외됐던 인사들과 기존 관료들로 통치를 시도했다.

그러나 경험이 별로 없는 새로운 인물들은 지배 엘리트들로부터 다소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촌뜨기라고 무시당하며 쫓겨나고 있는 반면 관료집단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믿지만 그 자신이 민주적이지는 않다.

그는 독재적인 방식으로 나라를 계속 이끌고 있다.

한국은 법의 지배가 아닌 통치자의 지배를 그대로 받고 있다.

공정하게 표현하자면 나라의 구조가 대통령을 선출된 독재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의회의 견제를 받지 않는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권력구조가 대통령을 믿지 못하게 하고 더욱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대대적인 정부 구조 개편을 언급했으나 아직은 말 뿐이다.

현재 그가 처한 어려운 상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의 대통령 등 많은 지도자들이 해외에서의 명성 만큼 국내에서는 인기가 없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김대통령은 최소한 전등 갓을 벗겨 정치에 빛이 비추게는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명예롭게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한명도 없다는 것은 기억할만한 일이다.

정리 =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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