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엿장수라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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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호 30면

엿장수를 만날 때마다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정말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나요”라고. 내가 만약 엿장수라면 바꾸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다. 바로 한국 이름의 영문 표기법과 화폐의 단위다.

한국말은 영어권 사람들이 가장 배우기 힘든 언어 중 하나다. 여기에 이름의 영문 표기 방식까지 너무 복잡해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중국이나 일본 이름을 영문으로 표기하는 방법은 딱 하나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름 하나를 최소한 20가지 방법으로 표기할 수 있다.

우선 성과 이름을 쓰는 순서가 다 달라 변형도 많다. 어떤 한국인들은 서양인의 편의를 위해 성과 이름의 순서를 바꾸는 일본식 표기 규칙을 따른다. ‘치국 김’(Chi-guk Kim)은 ‘김치국’보다 듣기 좋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순서를 바꾸는 건 부자연스럽고, 불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성을 먼저 쓰는 것을 선호하지만 붙임줄 없이 한 단어(Chiguk)로 표기한다. 이렇게 하면 외국인은 발음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성과 이름 사이에 쉼표를 찍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쓰면 메일 주소록처럼 보인다.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이름의 한 음절씩 떼어 쓰면서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가 이 관행을 따르는 바람에 미국의 한 상원의원은 김정일(Kim Jong Il)을 ‘김정 2세’라고 말해버리기도 했다. 다행히 뉴욕 타임스는 내가 선호하는 형식으로 표기 방법을 바꿨다. 성을 먼저 쓰고 이름은 붙임줄로 연결하는 것이다(이렇게 하면 ‘Kim Chi-guk’이 된다).
한국인은 자신의 이름을 영문으로 표기할 때 상당한 창의력을 발휘한다. ‘Baek’ ‘Baik’ ‘Paek’, 심지어 ‘Beck’까지 모두 ‘백’이라는 것을 외국인이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어떤 한국인들은 더욱더 창의적이라 매번 새로운 철자로 쓴 성씨와 씨름하게 된다.

물론 한글은 영어 알파벳보다 글자 수가 적고 영문으로 옮기기도 어렵다. 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하지만 정말 부탁하고 싶은 것은 최소한 일관성은 유지해달라는 것이다. 우선 추씨를 Tsu로, 장씨를 Zang으로 쓰는 것부터 막고 싶다. 왜 한국 이름을 중국 이름이나 일본 이름처럼 들리게 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가 없다. 4성이 있고 글자는 4만 개 이상이 되는 중국 사람들도 일관된 영문 표기법을 찾았다. 한국 이름에도 방법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바꾸고 싶은 또 다른 한 가지는 한국 통화 단위다. 한국에 처음 와서 스물두 살 때 100만원으로 백만장자가 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긴 했다. 하지만 한국 아이들의 산수 실력을 향상하는 데는 더 좋은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유명 환율정보 제공 사이트인 익스체인지레이트닷컴(www.exchangerate.com)에 오른 50개국 통화 중 한국 통화가 제일 약하다. 칠레가 두 번째인데 한국보다 2배 강세다. 미국 달러 대비 환율은 인도네시아의 루피화나 베트남 동보다도 약세다.

약한 통화정책을 유지하는 장점은 딱 한 가지다. 아이러니하게 한국 통화가치와 가장 비슷한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북한이다. 비록 암시장에선 최근 한국에 닥친 더위만큼이나 변동이 심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냥 용감하게 영을 두 개 혹은 세 개 정도 떼어내자. 몇 년 전 5만원권이 나왔을 때도 세상이 망하지 않았다. 작은 단위의 화폐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좀 더 편리하게 만들 것이다. 현금으로 불법 자금을 숨겨둔 사람 빼고 말이다.

몇 가지를 더 제안하고 싶다. 하수구를 닫아놓는 것, 수돗물을 진짜 마실 수 있게 하는 것,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시기를 일치하도록 하는 것 등등.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내가 출마하려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다.



피터 벡 미 버클리대 졸업.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 조사·학술담당 실장, 국제위기감시기구(ICG) 동북아사무소 소장을 역임. 최근 아시아재단 한국대표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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