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종환 회장의 아름다운 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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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관정(冠廷) 이종환교육재단의 이종환(삼영화학 회장) 명예이사장이 또 서울대 중앙도서관 신축에 600억원을 쾌척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관정은 이미 개인재산의 95%인 8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해 기부왕(王)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기부 규모뿐만 아니라 그의 독특한 기부 철학도 울림이 크다. 그는 “기초과학 분야를 지원하되 실용 학문인 의대·법대에는 내 돈을 쓰지 말라”고 했다. 관정교육재단도 가정 형편보다 가능성을 우선해 장학생을 선발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평소 “빌 게이츠와 같은 인물이 2명만 나와도 한국이 먹고살 수 있다”는 관정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이런 기부는 ‘베풂’을 넘어 미래 발전에 이바지한다.

 관정은 엄청난 자산을 일구고도 점심은 늘 짜장면으로 때우고 비행기는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녔다. 그는 “돈을 더 모아 놓아봤자 재벌밖에 더 되겠느냐”며 2000년부터 ‘손에 가득 쥐었으니(滿手有), 빈손으로 떠나겠다(空手去)’는 다짐을 실천에 옮긴 인물이다. 우리는 그동안 거부(巨富) 반열에 오른 많은 사람을 지켜봤다. 하지만 관정처럼 그 자산을 의미 있게 쓴 경우는 드물었다. 그제 구순(九旬) 생일잔치를 한 그가 걸어간 길을 따라 독특한 기부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83세의 독림가 손창근옹이 평생 가꾸어온 1000억원대의 임야를 국가에 기부했다. 또 경기도 성남에선 임대료 수입을 성적이 오르는 저소득층 학생에게만 지급하는 익명의 독지가가 눈길을 끌었다.

 양극화로 우리 사회는 몸살을 앓고 있다. 새로운 자본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서민의 돈을 들고 튄 저축은행 사태, 그리고 대기업들의 해묵은 재산 다툼으로 국민의 마음은 많이 상해 있다. 그래서 관정의 기부는 더욱 돋보이고, 가뭄 속의 단비 같은 느낌이다. 물론 양극화의 근본적 해결책은 정치와 정책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기부 문화 확산은 사회 갈등을 치유하는 소중한 샘물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보다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들고, 한국의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하는 밑거름이다. 관정 덕분에 우리에겐 여전히 미래와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