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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대신 동거 택한 첫 프랑스 대통령으로 올랑드는 역사에 남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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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려면 ‘르몽드’를 읽고, 그 뒷얘기를 알려면 ‘파리마치’를 봐라.” 20여 년 전 특파원으로 파리에 처음 부임했을 때 어느 선배가 한 충고다. 그 바람에 사진 위주의 시사주간지 파리마치의 충실한 독자가 됐다. 볼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촬영하고, 어떻게 입수했을까 싶은 특종 사진이 많다. 다양한 뉴스 메이커들에 관한 가십성 기사는 프랑스 사회의 이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사진 중 하나가 넷째 아이를 낳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골렌 루아얄 환경장관의 사진이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밑에서 각료로 있던 루아얄이 갓난아기를 안고 있고, 곁에는 먼저 태어난 세 자녀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바로 이 네 아이의 생부(生父)가 지난 5일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프랑수아 올랑드다. 당시 올랑드는 올챙이 국회의원이었다.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 양성소인 국립행정학교(ENA) 동창생인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같이 사는 동거 파트너 관계였다. 동거 상태에서 네 번씩이나 출산을 하고, 또 그 사실을 당당하게 공개하는 모습이 낯설지만 신선하게 느껴졌다.

 올랑드 당선자는 지금도 법적으로는 미혼이다. 파리마치의 문화부 기자이면서 TV채널 ‘디렉트8’의 정치대담 프로그램 진행자인 발레리 트리르바일레와 동거 중이다.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트리르바일레는 아이 셋을 가진 싱글맘 상태에서 2006년 올랑드와 동거를 시작했다. 엄밀히 말해 두 사람은 정식 결혼이나 단순한 사실혼 관계가 아니라 ‘시민연대협약(PACS·팍스)’에 의한 파트너 관계다. 요즘 프랑스에서는 결혼보다 팍스를 택하는 커플이 많다. 팍스가 대세다. 사회복지와 세금·자녀교육 등에서는 결혼과 동일한 혜택과 보호를 받지만 당사자끼리 합의하면 신고만으로 자유롭게 갈라설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올랑드의 첫 번째 동거 파트너였던 루아얄은 2007년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로 출마해 니콜라 사르코지와 맞붙었지만 패했다. 그때 올랑드는 사회당 당수로서 전 동거녀의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했다. 이번 대선에서 올랑드가 승리함으로써 5년 전 루아얄의 패배를 설욕한 셈이 됐다. 이번 선거에서 루아얄도 전 동거남의 선거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올랑드 정부의 조각(組閣) 명단에 루아얄이 포함될 거라는 소문도 있다.

 프랑스 최초의 동거녀 출신 퍼스트 레이디에 대한 예우 문제를 놓고 벌써부터 말들이 많다. 트리르바일레는 엘리제궁에 들어가도 동거관계를 유지하며 일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의전과 경호 문제를 생각하면 파트너 관계로 남기가 곤란할 거라는 지적도 많다. 결국 결혼할 수밖에 없을 거란 얘기다. 남들이 뭐라든 당사자들이 결정할 문제다. 다음 주 파리마치에 실릴 사진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