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금리는 덤핑? 점포 없으면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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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김한철

최근 한 시중은행 PB의 푸념. “산업은행 다이렉트 때문에 죽겠습니다. 저축은행 비슷하게 금리를 주니까 그쪽으로 죄다 몰려요. 이건 상도의를 무시한 덤핑이에요. 요즘 같은 때 4.5%가 가당키나 합니까. 오래 못 갈 거예요.”

 산업은행의 KDB 다이렉트뱅킹은 은행권에서 ‘괴물’로 불린다. 일반 정기예금 상품이 보통 3%대 후반, 인터넷 정기예금 상품도 4.3% 안팎의 금리에 그치는 저금리 시대. KDB다이렉트의 하이 정기예금은 연리 4.5%를 내세우고 손님 몰이를 하고 있다. “죽겠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역마진이다” “국책 은행의 본분을 잊고 출혈 경쟁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은행이 작심하고 방어에 나섰다. 김한철 수석부행장은 8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역마진이 아니다. 점포 운영비가 없어 실질 마진은 시중은행 상품과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KDB다이렉트는 무섭게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산은에 따르면 7일 현재 KDB다이렉트 뱅킹 계좌 수는 모두 4만5777개, 수신액은 1조749억원이다. 지난해 9월 상품을 처음 출시한 지 7개월 만에 예금 1조원을 돌파했다.

 일부 은행에선 “손해를 감수하고 고금리를 주고 있다면 건전성이 급속히 악화될 수 있어 장기적으로 판매할 수 없을 것”이란 ‘음해성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산업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1.46%. 시중은행 평균 NIM(2.37%)보다 0.9%포인트 낮다. 김한철 수석은 “보통 대형 은행들이 전국에 수천 개 지점을 운영하는 데 비해 우리는 전국 지점이 67개에 불과하다. 점포 임대료나 인건비를 감안한 실질 NIM을 따지면 산은이 1.03%, 시중은행이 1.13%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책은행이 시중은행과 출혈 경쟁을 벌이는 게 본분에 맞느냐”는 비판도 있다. 무디스와 S&P 등 국제신용평가사는 산업은행의 신용등급을 한국의 국가신용등급과 같이 매긴다. 이 때문에 산은의 해외자금조달 금리는 시중은행보다 0.3~0.4%포인트 낮다. 1000억 단위로 이뤄지는 자금조달 규모를 감안하면 적지 않는 차이다. 최근 산은이 서울 대치동·방배동, 분당 정자동 등 부촌에 잇따라 지점을 낸 것도 시빗거리다. “국책 은행의 역할을 망각하고 VIP 마케팅에만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김한철 수석은 “돈이 모이는 쪽에 점포를 열다보니 서울 강남에 점포를 내게 된 것은 맞지만 우체국과의 제휴를 통해 전국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며 “신용보증기금 등과 제휴해 영세 소상공인 대출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해명했다.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대형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로 또다시 KDB다이렉트 뱅킹이 주목받는 분위기여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 시장에서 이탈한 자금이 대거 KDB다이렉트 상품으로 쏠리는 분위기”라며 “상황이 지속되면 업계가 조직적인 대응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산은 측은 올해 안에 KDB다이렉트 뱅킹으로 2조원의 예수금을 유치할 계획이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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