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주요 도시의 미술 감상

중앙일보

입력

하나의 감동적인 그림을 글로써 풀어놓는다는 일은 어디까지 유효할 것인가. 최근 들어 그림을 글로써 풀어가는 책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그런 책들마다 나름대로 그림에 대한 지은이의 독특한 생각이 담겨 있어 그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다양한 그림읽기를 시도할 수 있어 좋은 일입니다.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예담 펴냄)은 지은이의 독특한 시각을 바탕으로 했다기보다는 그림을 좋아하는 평범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알기 쉽게 혹은 그림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기에 편안한 글로 쓰어진 책입니다.

'예술에 관한 한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찬사를 받은 그가 영국 BBC 방송의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방송했던 내용이라 하니, 그의 글이 담긴 대중성은 이미 짐작할 만 합니다.

이 책은 원래 영국의 유명한 출판사 돌링 킨더슬리가 94년 '웬디 수녀의 명화 이야기'라는 책으로 출판한 것을 97년 국내의 디자인하우스에서 번역 출간했던 것입니다. 디자인하우스의 책은 내용이나 편집 모두 좋은 책으로 호평받았으나 전집으로 돼 있어서 일반 독자가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새로 예담 출판사에서 낸 이 책은 전집 만큼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아도, 일반 독자가 웬디 수녀의 그림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웬디 수녀는 이 책에서 그림을 아주 편안하게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하나의 그림이 가지는 뜻을 고정시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림에 얽힌 이야기들을 모두 풀어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그림을 보는 사람 스스로가 자신만의 감동을 엮어내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의 그림에 대해 군더더기가 될 법한 이야기들은 최대한 자제하고, 그림을 바로 이해하는 데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만을 간략하게 풀어놓습니다.

"공작의 깃털처럼 눈부신 날개를 달고 분홍색과 금색이 섞인 옷을 입고 있는 천사는 확신에 찬 듯이 보이는데, 지금 이 날씬한 소녀 앞에 몸을 숙이고 그녀에게 환영의 말을 건네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그림은 환영의 말과 침묵에 대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이 책 51쪽에서)

프라 안젤리코의 명화 '수태고지'를 읽어가는 부분입니다. 그림을 그린 화가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습니다.

"어떤 화가는 사실적이고 어떤 화가는 관념적인데, 보티첼리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비록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아니 어쩌면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항상 완벽한 여성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이 책 55쪽에서)

그림을 그려낸 화가와 그 그림을 그린 배경을 풀어내놓고는 웬디 수녀 자신의 생각도 덧붙입니다. 1차 감상자로서의 느낌일 뿐입니다. 평범한 독자들로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한 평이한 해설입니다.

이 책은 스페인의 마드리드로부터 이탈리아의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오스트리아의 빈,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스부르크, 독일의 베를린, 프랑스의 파리 등 유럽의 주요 예술도시 들을 직접 여행하면서 그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그림을 하나하나 설명합니다.

독자들도 이 글들을 읽은 동안 마치 자신이 여행에 동참하면서 웬디 수녀의 그림 해설을 편안하게 듣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