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어린이집 이대로 둘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박수련
사회부문 기자

감사원이 보육지원 정책의 현장 집행 실태에 대해 감사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못된 어른들은 돈만 된다면 그 대상이 어린이라고 해서 전혀 주저함이나 거리낌이 없었다. 집에 있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처럼 꾸며 보조금을 챙긴 어린이집도 있고, 무자격자를 보육교사로 등록해 정부 지원 인건비를 타낸 원장도 등장한다.

 이처럼 감사에서 드러난 사례들은 약과다. 현장 사정은 더 심각하다. 권리금이 수천만원에 어린이집 운영권이 매매된다. 이렇게 운영권을 사면 본전 뽑으려고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각종 특별활동비 명목으로 부모에게 추가 교육비를 걷고,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어린이집도 있다. 자식 이름을 어린이집에 빌려주고 돈을 받는 부모도 있으니, 말 다했다. 보육에 들어가는 연간 8조원의 국비와 지방비가 몇 년째 이런 방식으로 새고 있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정부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앞두고 어린이집 설립을 인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꿨다. 취학 전 어린이교육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2005년 다시 지자체 인가로 바뀔 때까지 어린이집은 세 배 가까이로 늘었다. 어린이집은 크게 늘었지만 관리할 행정력은 그대로였다. 3~4년씩 대기해야 할 정도로 인기 높은 국·공립 어린이집은 농어촌이나 저소득층이 많은 취약지역에 먼저 짓도록 돼 있지만 정부는 챙길 의지나 능력이 없었다. 저소득층 아동이 거의 없는 경기도 판교신도시부터 지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불법으로 보조금을 타낸 어린이집에 대해서도 복지부와 지자체는 운영정지 처분이나 고발 등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복지부가 ‘우수’ 평가 인증을 한 어린이집 가운데서도 970곳이나 적발됐지만 인증은 취소되지 않았다.

 이러니 어린이집 운영자들의 ‘간’이 커졌다. 여론의 질책에 지난달 복지부가 어린이집 부정을 신고한 사람(파파라치)에게 포상금을 주는 정책을 발표하자 민간 어린이집 대표가 단식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지난 2월 말엔 어린이집 집단휴업도 있었다. 아이를 시설에 맡길 수밖에 없는 부모들이 인질이 됐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는 예산을 아무리 늘려도 보육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없다. 깨진 독을 바꿔야 한다. 어린이집에 다녀야만 보육료를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출 가이드라인을 주면서 부모의 선택권을 넓혀줘야 한다. 그러면 획일적인 시설보육을 벗어난 다양한 모델이 나올 수 있다. 무상보육이 시작된 올해야말로 보육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기 좋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