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부도에 중기·벤처 '일손 안잡혀'

중앙일보

입력

중소.벤처업계는 올해 외환위기 이후 가장 힘든 한 해를 보냈다.

대기업의 자금난과 대우자동차.동아건설 부도 등의 여파로 협력.하청업체들이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중소기업 부도 업체수는 지난달말 현재 3천4백35개(법인 기준)로 지난해(3천3백71개)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도금.플라스틱 사출 등 3D업종의 중소 제조업체들은 실업자가 늘고 있는데도 일손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굴렀다.

연초 코스닥 열풍을 업고 고조됐던 벤처붐도 하반기 들어 시들해졌다. 올 한해동안 33개 코스닥 등록 기업이 경영.자금난 등으로 퇴출됐다. 일부 벤처기업은 감원 등 구조조정을 단행해 업계의 어려움을 반영했다.

그러나 창업 열기는 꺾이지 않아 올 3분기까지 4만8천29개의 법인이 탄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33% 늘어난 것이다.

◇ 내우외환 겪은 중소기업계〓중소기업계는 연초부터 정치 바람에 휘말렸다.

4.13총선을 앞두고 박상희 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이 전국 조합이사장 등 3백여명의 이사장과 함께 여당에 입당해 여.야간 뜨거운 정치 쟁점이 됐다.

이로 인해 朴 전 회장은 9월말 회장직을 사퇴했고 예기치 않은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중소기업계의 분열상이 재현됐다.

결국 11월말 치러진 보궐 선거에서 김영수 전자조합 이사장이 단독 출마해 당선됐다.

대우자동차 협력업체 등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납품 대금을 제때 못 받거나 모기업이 현금 대신 어음 결제 비중을 늘리는 바람에 올해 내내 자금난에 시달렸다.

중소기협중앙회에 따르면 대기업 자금사정이 나빠지면서 납품 대금의 어음 비중이 79%에 달했다.

또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이 지나치게 납품 단가를 인하해도 납품 관계가 끊길까 두려워 반발을 못한 채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기협중앙회가 조사한 올 중소기업 건강도 지수(SBHI)를 보면 거의 모든 업종이 1백 미만으로 나타나 중소기업 경기의 급격한 하락세를 보여줬다. 특히 의복.목재.섬유 등 경공업은 모두 70 미만으로 나타났다.

SBHI는 100을 넘으면 전년보다 경기가 나아진 것을 의미하고 100미만이면 나빠진 것을 뜻한다. 중소기업들의 생산(91.4).내수(86.5)역시 나빠졌다.

대기업과 무관한 단독 중소기업들도 경기가 후퇴하면서 영향을 받았다.

박인복 소기업소상공인연합회장은 "단체수의계약 제도 혜택을 못 받거나 대기업에 납품하지 않는 단독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경영난을 면치 못한다" 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남북경협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IMRI 등 일부 전자업체들이 북한에 완제품 생산라인을 갖춘 것을 제외 하면 아직도 임가공 수준을 넘지 못했다. 예정됐던 중소기업인들의 방북도 대부분 보류됐다.

◇ 냉.온탕 오간 벤처업계〓다음커뮤니케이션.새롬 등의 성공 신화를 낳으면서 연초부터 벤처 붐이 일었으나 지난 5월 이후 코스닥 시장이 맥을 못추면서 벤처 경기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벤처캐피털과 엔젤 투자자들마저 고개를 돌리자 자금 운영에도 구멍이 생겼다.

벤처업계의 리더 격인 메디슨이 자금난을 겪은 것은 벤처기업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였다. 메디슨은 한국의 대표적 벤처 브랜드였던 한글과컴퓨터의 지분까지 팔았다.

이런 가운데서도 기술과 끈기를 무기로 삼은 벤처기업들은 약진을 계속했다.

팬택.휴맥스.옥션 등은 지난달부터 미국 모토로라.e베이 등을 상대로 대규모 수출 계약을 하거나 거액의 외자유치 협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대학교수나 연구원들이 벤처기업을 차리는 '실험실 창업' 이 활기를 띠면서 벤처산업의 새 활로를 열고 있다.

상아탑과 연구실에 묻혀 있던 첨단기술들이 속속 선보이면서 교수.연구원이 대표를 맡는 중소기업청 등록 벤처기업은 지난해 말 1백28개에서 1년새 세배 가까운 3백50여개에 달했다.

정부의 강력한 벤처 육성책에 따라 서울 테헤란로가 벤처특구로 지정됐다.

또 국책 연구기관이 몰린 대전의 대덕연구단지는 서울 테헤란로에 이어 대단위 벤처타운으로 탈바꿈 했다.

국내 대표적 굴뚝산업 단지인 서울 구로공단도 지난달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로 이름을 바꾸며 벤처 요람으로 거듭 태어났다.

중기청에 따르면 벤처 인증을 받은 업체가 지난해말 4천9백34개에서 지난달말 9천3백31개로 두배 가까이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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