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 걸린 딸, 이틀 간 먹인 것 조사해보다 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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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9개월 된 은서(여·가명)는 얼마 전 갑자기 열이 나고 설사를 해 엄마와 함께 소아과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상한 음식을 먹어서 생긴 세균성 장염”이라고 진단했다. 은서 엄마는 집에 돌아와 아이가 먹은 것들을 하나씩 점검해보다가 어린이 음료의 냄새를 맡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이가 한번에 먹기에는 양이 많아 이틀에 나눠 먹였는데, 그사이에 음료가 상해 있었던 것이다.

 요즘 어린이와 유아들에게 뽀로로·짱구·로보카 폴리 등의 캐릭터를 활용한 어린이용 음료가 인기다. 그런데 이 음료 중 상당수가 쉽게 상하고 산성인 데다 당 함량이 높아 탈이 나거나 충치와 비만 우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이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어린이 음료 17개 제품의 산도(pH·페하)와 당 함량, 개봉 뒤 세균 증식 속도 등을 조사·시험해 3일 발표한 내용이다.

 조사 대상 17종 중 13종은 일부를 마시고 놔뒀을 때 상온(섭씨 25도)에서 4시간 만에 상하기 시작했다. 1mL당 100만CFU(Colony Forming Unit·세균을 세는 단위)까지 세균이 급증했다. 소비자원은 “이 정도 세균 수는 미생물학적으로 ‘초기 부패 상태’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뚜껑 윗부분을 손으로 살짝 뽑아 올린 뒤 빨아 마시고 다시 닫는 ‘피피캡(Pull-Push Cap)’ 용기 음료들은 모두 이랬다. 마실 때 용기 안으로 침과 함께 세균이 들어가 번식하는 것이다.

 충치 위험은 17종 전부에서 나타났다. 전 제품의 산도가 pH 2.7~3.8로 산성이었다. 소비자원 시험분석국 홍준배 차장은 “pH 5.5 이하에서는 치아 보호막인 에나멜층이 손상돼 충치가 생기기 쉽다”고 말했다. pH는 7이 물과 같은 중성이고, 수치가 작을 수록 강산성임을 뜻한다.

 당분이 많이 들어 비만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제품도 다수였다. 코카콜라음료의 ‘쿠우오렌지’(당분 함량 38g), 농심의 ‘카프리썬 오렌지맛’(23g), 상일의 ‘유기농아망오렌지’(21g), 조아제약의 ‘튼튼짱구’(20g)는 당이 17g을 넘고 단백질은 전혀 들어 있지 않아 식약청 분류상 ‘고열량·저영양 식품’에 속했다. 일부 음료는 칼슘이나 비타민 C가 들어 있다고 제품 표면에 강조해놓고서 정작 정확한 함량은 표시하지 않았다. 이는 식약청의 ‘식품 등 표시기준’ 위반이다.

 소비자원은 어린이 음료를 마실 때 한번에 마실 수 있는 용량의 제품을 산 뒤 개봉 후 빨리 마시고, 남은 음료는 냉장 보관하며, 마신 후 물이나 양치액으로 입 안을 헹굴 것을 권했다. 소비자원 송규혜 식품미생물팀장은 “음료를 마신 뒤 바로 양치질을 하면 치아 표면의 보호막이 상해 오히려 충치가 더 잘 생기기 때문에 양치질은 30분 지난 뒤에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소비자원은 제조업체에는 어린이가 한번에 마시기에 적합한 양으로 용기를 만들 것을, 식약청에는 식품 표시기준을 위반한 업체에 행정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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