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시간탐험 (22) - 173cm의 작은 거인

중앙일보

입력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미네소타 트윈스가 맞붙은 1991년의 월드시리즈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중 하나였다.

7차전에 가서야 승부가 갈린 것은 물론, 다섯번이 1점차 승부였으며, 연장전도 세번이나 치뤘다.

미네소타는 초반 2연승으로 기세 좋은 출발을 했지만, 이후 애틀란타에게 3연패를 당하며 패배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그러나 미네소타에는 커비 퍼켓이 있었다.

미네소타의 홈구장인 메트로 돔에서 열린 6차전. 퍼켓은 1회초 애틀란타 선발 스티브 에이버리로부터 선제 2점홈런을 뽑아냈다. 동점 상황에서 펜스를 넘어가는 홈런타구를 잡아내기도 한 퍼켓은 연장 10회말 극적인 끝내기 솔로홈런을 작열시키며, 미네소타를 벼랑끝에서 구해냈다.

결국 미네소타는 7차전 잭 모리스의 1-0 완봉승으로 이전 해의 지구 꼴찌팀이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가져가는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한다.

키가 173cm에 불과한 퍼켓은 당시 미네소타의 간판타자였다. 데뷔전에서 4안타를 쳐낸 퍼켓의 빅리그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95년까지 12년 통산 2,304안타를 친 퍼켓에게 3천안타클럽의 가입과 명예의 전당 입성은 이미 보장된 것처럼 보였다.

96년 스프링 캠프. 애틀란타와의 시범경기에서 그렉 매덕스로부터 3안타를 뽑아내며 변함없는 기량을 뽐냈던 퍼켓은 다음 날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일전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눈을 뜬 퍼켓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이 찾아왔다. 앞이 온통 뿌옇게 보였던 것이다. 악성 녹내장(glaucoma). 녹내장은 시력 2.0이던 그의 오른쪽 눈을 앗아갔고, 미네소타의 작은 거인은 그렇게 무너졌다.

96년 8월 17일, 퍼켓은 서른다섯이란 창창한 나이에 눈물의 은퇴식을 치뤘다. 그리고 지난해 경쟁자였던 토니 그윈(샌디에이고)과 웨이드 보그스(은퇴)가 자신의 꿈이었던 3천안타고지에 등정하는 것을 먼발치서 지켜봐야만 했다.

올해로 은퇴한지 5년이 된 퍼켓은 데이브 윈필드, 돈 매팅리, 데이브 스튜어트 등과 함께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의 후보가 됐다.

한 쪽 눈의 시력을 잃고도 언제나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 퍼켓.(퍼켓은 현재 트윈스의 부사장에 재직중이다) 그가 영광의 '첫번째 해 헌액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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