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 사줄 돈 없던 박수근 자녀 위해 직접 그린 그림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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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화가 박수근이 자식들을 위해 그린 그림책에는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 이야기가 실렸다. 평강공주(사진 왼쪽)가 산에서 내려오던 바보 온달(가운데)과 만나는 장면. [사진 사계절]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박수근(1914~65)의 그림은 울퉁불퉁한 질감이 살아있는 화가 박수근의 그림과 달리 밝고 포근했다. 박수근이 자녀를 위해 그렸던 그림책을 엮어 펴낸 『박수근의 바보 온달』(사계절) 속 수채화는 아버지 품처럼 따사로웠다.

 궁핍한 살림 탓에 아이들에게 책을 사줄 수 없었던 박수근은 직접 그림을 그려 책을 만들었다. 글은 그의 아내인 김복순 여사가 썼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수 만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림책이다. 원본은 강원도 양구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이번 책은 원본에 실린 일곱 편의 고구려 이야기 중 그림이 풍부한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 ‘아버지를 찾는 유리 소년’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 세 편을 추려 그의 맏딸인 박인숙씨가 이야기를 들려주듯 글을 다듬었다.

 박인숙씨는 “아버지가 고구려 벽화를 좋아하셨다”며 “고구려 사람들의 드높은 기상과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를 통해 가난에 굴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와 의지를 알려주시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가난했지만 자상했던 아버지 박수근은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뿐 아니라 신문 연재소설이나 외국 유명화가의 그림을 모아 화집도 만들었다. 그런 아버지를 떠올리며 박인숙씨는 “누런 종이에 하나하나 오려 붙여 만들어진 책과 화집을 넘기면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고 애틋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번 책은 박수근 47주기와 박수근미술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출간됐다. 4일부터 7월15일까지 강원도 양구군 박수근미술관(033-480-2655)에서 ‘동화로 보는 박수근 전’도 열린다. 박수근의 소년 시절을 담은 그림책 『꿈꾸는 징검돌』(사계절)도 함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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