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콤플렉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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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호 34면

“당신 이런 것도 다 콤플렉스야. 뭐 그런 걸 갖고 흥분해요.”
식당에서 우리보다 늦게 온 손님에게 먼저 음식이 나올 때, 그 사소한 착오에 대해 내가 느끼는 부당함은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나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분개한 시인 김수영처럼 옹졸하게 분개하고 마는데 그런 나를 아내가 한심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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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말처럼 옹졸함도 일종의 콤플렉스일까? 나는 콤플렉스가 많다. 외모, 목소리, 학력, 말과 글, 경제적 능력, 지적 능력 등 콤플렉스 덩어리다. 콤플렉스가 어느 정도로 많으냐 하면 심지어 콤플렉스가 많다는 사실마저 콤플렉스일 정도다. 언젠가 아내는 이렇게 나를 놀렸다. “당신 혹시 취미가 콤플렉스 수집?”

나는 내 취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콤플렉스의 시작은 미약했다. 내 외모는 다 아시는 것처럼 대머리에 수염을 기른 험상궂게 생긴 얼굴이다. 어쩌다 엄마에게 안긴 아기랑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래서 내가 웃어주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아기가 울음을 터뜨려 난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은행에 가면 청원경찰을 긴장시키는 것 같아 되도록이면 은행 출입을 삼간다. 그렇다고 내 외모에 대해 칭찬의 말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가령 훤칠한, 풍만한, 우람한, 딱 벌어진, 잘록한, 단아한 같은 말들이 내 외모에 따라붙는다. 문제는 편집이다. 편집에 따라 그 말은 은근한 흉이나 놀림이 된다. 훤칠한 앉은 키, 풍만한 배, 우람한 머리, 딱 벌어진 엉덩이, 잘록한 어깨, 단아한 다리. 그것이 내 외모다. 이 정도면 내 외모 콤플렉스에 대한 알리바이로 충분하지 않을까?

마침내 우리 자리에도 우동이 나왔다. 나는 면을 후루룩 빨아들이며 생각한다. 누가 내 외모에 주목할까? 가령 이 식당에서. 아무도 없다. 다들 대화나 음식이나 휴대전화에 빠져 있다. 어쩌면 콤플렉스란 남들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대수롭지 않은 것이지만 자신에게는 엄청나게 커 보이고 그래서 다들 그것만 보고 있을 것 같은 어떤 착각은 아닐까?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내 경우 생각과 말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일이라 한꺼번에 하기 어렵다. 생각할 때는 말하지 못하고, 말할 때는 생각하지 못한다. 생각하면서 말하려고 하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고 말은 횡설수설이 된다. 게다가 상대방의 반응에 민감하다. 만일 상대가 내 말에 호응하지 않거나 반발하면 생각과 말의 스위치가 일제히 꺼진다. 나는 아내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우동 국물만 들이켠다.

누구나 조금씩은 콤플렉스가 있지 않을까? 아내는 없다. 적어도 없는 것처럼 군다. 식사 후에 코를 힘껏 푸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존재 자체가 나 같은 사람의 콤플렉스를 자극한다. 나는 코를 조용히 닦는다. 식당을 나오며 콤플렉스 없는 아내가 말한다.

“아까 그 여자 가슴 크더라.” “누구?” “다 보고선 왜 그래? 아까 우리 건너편에 앉아 있던 여자.” “난 정말 못 봤는데.” “괜찮아요. 봤다고 해도. 당신은 별거 아닌 것 갖고 거짓말하더라. 사람이 좀 솔직해져 봐요.”

나는 억울해서 울 것 같았다. 아내가 도무지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나는 대체 뭐 하느라 그 여자를 못 본 것일까 싶어서. 그나저나 이렇게 해서 나는 아내의 콤플렉스를 하나 발견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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