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내 안에는 왜 이다지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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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정진홍
논설위원

# 새벽에 깼다. 씻고 나서 이른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라곤 우유 탄 커피와 바게트가 전부였다. 밖은 아직 어두웠고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하지만 꾸려놓은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그 옛날 나폴레옹이 넘었다는 길을 따라 피레네 산맥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 가파른 산길은 아니었지만 계속 오르막이다 보니 쉬이 지쳤다. 하지만 안개 속에서 피어나듯 피레네 산맥으로 오르는 길의 풍광은 참으로 장쾌하고 아름다웠다.

 # 내가 피레네 산맥을 오른 까닭은 그것이 800㎞에 달하는 순례길 ‘산티아고 가는 길’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 출발을 위해 나는 지난 11일 투표를 하자마자 공항으로 가서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 앉은키만 한 배낭과 함께. 그리고 다음날 파리 몽파르나스를 떠나 바욘을 거쳐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지대에 있는 생장피에드포르로 갔다. 거기서 하룻밤을 자고 나서 다음날부터 걸어서 피레네 산맥을 넘은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산티아고 가는 길의 첫 여정이었다.

 # 대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에 오르지만 나는 혼자 올랐다. 물론 입산 여부를 통제하기도 하는 순례자 사무소에선 안전을 위해 무리 지어 오르기를 권했지만 난 안전 대신 고독을 택했다. 철저히 고독하기로 작정하고 떠난 길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10㎏이 족히 넘는 배낭 무게와 지독하게 내리는 비는 길 떠나는 이를 성가시게 했다. 더구나 평소 산행을 즐긴다고 자부하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빨리 지쳤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된 까닭도 있었겠지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다. 가만 보니 우리 산이 초반에 가파르게 치고 올라선 후엔 주로 평탄한 능선 종주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달리 피레네를 오르는 산길은 길게 늘어선 뱀꼬리 같은 길이 내리막 없이 계속 오르기만 하는 것 아닌가. 홀로 비 오는 와중에 어린애만 한 무게의 배낭을 메고 그 오르막길을 따라 걷자니 체력이 바닥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열 걸음 걸은 후 쉬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됐다. 길가에 주저앉기도 여러 차례였다.

 # 해발 700m를 지나자 비는 진눈깨비로 변했고 1000m를 넘어서자 눈으로 변했다. 바람까지 거세져 거친 눈보라 때문에 길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지만 그 거센 눈보라 속에서도 말들은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었다. 인간인 내가 부끄러울 만큼. 너무 힘들면 울음이 아니라 헛웃음이 난다. 내가 그랬다. 입으론 평소 부르지 않던 노래까지 읊조리다 못해 불러 젖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피레네를 죽기살기로 오르던 내가 울기 시작했다. 단지 힘들어서 흘리는 그런 눈물이 아니었다. 오장육부의 속을 비집고 올라오듯 오래 묵은 눈물들이 솟구쳐 올랐다. 도대체 그칠 줄을 몰랐다. 정말이지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 토해냈다. 내 안에 왜 이다지도 까닭 모를 눈물이 많은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천지사방이 광활하기 그지없는 피레네의 산중에서 주저앉아 생각해 보니 그것은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저마다 살아온다는 것이 보통 일인가? 알고 보면 그것만큼 힘든 일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이 피레네 산중에서 나 스스로 절대고독 속에 무장해제되었을 때 분출할밖에. 그래서인지 울고 나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살 것 같았다. 아니 너무 살고 싶어졌다. 정말 제대로 잘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졌다. 그래서 이 길을 걷게 한 신께 감사했다.

 # 살면서 정말 필요한 것은 웃는 것 못지않게 우는 것이다. 사람들은, 특히 남자들은 울 곳을 못 찾아 자기 안의 눈물을 감추고 숨겨 놓지만 언젠가는, 그 어디에선가는 쏟아내야 사는 것이리라. 누구나 예외 없이 자기 안에는 까닭 모를 눈물이 숨어 있다. 때로 그것을 쏟아내야 한다. 하지만 쏟아낼 만한 곳도, 쏟아낼 만한 시간도 없다. 아니 쏟아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나 쏟아내야 산다. 그래야 제대로 살 수 있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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