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정부의 팔 '안으로 굽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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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다소 무감각하게 받아들일 지 모르지만 간사이흥은 등의 도산은 재일동포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다.

뉴스 자체가 놀랍기도 하지만 앞으로 밀려닥칠 경제적 파장을 감당할 일이 막막한 것이다. 영세한 재일동포 기업인들에게 일본 금융기관의 문턱은 높고도 높다.

그래도 자신들의 사정을 잘 아는 동포 신용조합이 문을 닫아야 한다면 앞으로 급할 때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이제와서 책임 따져봤자 이미 쏟아진 물이라 주워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우선 신용조합들 스스로도 오래전부터 부실화에 따른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으나 자력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일본 당국의 칼을 받았다는 점이다.

1997년에는 전국 신용조합을 6개 블록으로 나누어 통합한다는 거창한 계획도 있었다. 그러나 조합별 이해 관계와 지역별 감정 대립이 복잡하게 얽혀 조금도 진척이 없었다.

특히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關西)와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關東)로 나뉘어 일본 땅에서조차 지역 대립을 벌여왔다. 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힘을 합치지 못하고 별도로 은행설립 작업을 추진해왔다.

한국 정부와 주일 한국대사관도 '재외국민 보호' 보다 일본 금융당국에 대한 협조에 더 비중을 두어온 인상이다.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한다는 원칙은 옳다.

그러나 장소가 외국이고, 그 대상이 자국 동포들의 금융기관이라면 한국 정부의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외환보유고에서 4백억엔을 지원해왔다.

이것도 일종의 공적자금이다. 그렇다면 일본 당국이 나서기 전에 손을 썼어야 했다. 관할지역이 아니어서 행정권을 동원할 수 없다면 조합 리더들의 대립을 조정하는 노력이라도 적극적으로 벌였어야 했는데 계속 중립만 강조했다.

일본의 공적자금을 최대한 많이 끌어내려면 지금 정리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계산인 듯하다.

그러나 신용조합의 도움으로 겨우 가게라도 유지하고 있는 동포들이 다 쓰러지고 나면 나중에 공적자금 받아봤자 소용이 없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 와중에 동포은행 설립의 주도권을 쥐려는 일부 동포 기업인들이 일본 당국의 조치에 환영의 뜻을 표하고 적극 협조하겠다는 성명서까지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한.일 양국의 재정지원을 받는 주체가 되려는 계산 속에 따른 것이다. 망할 때까지 분열하는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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