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아방가르드 미술가 김구림(76·사진)의 작업실에 도둑이 들었다. 20여 점, 10억원 상당 작품이 도난당했다. 서울 평창동에 사는 김씨는 경기도 장흥의 작업실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사건은 작업실을 비운 19∼22일 사이에 벌어졌다. 23일 오전 김씨가 깨진 유리창, 그림이 잘려 나간 캔버스틀 여러 개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폐쇄회로TV(CCTV)가 없는 곳이 딱 하나 산 방향 2층 방인데, 그곳 이중창을 망치로 깨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듯하다. 작업실에 있던 캔버스천으로 창을 가린 뒤 그림들을 캔버스틀에서 도려내 갔다. 얇은 장갑을 끼고 있어 지문도 남기지 않았다더라. 황당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구림은 한국의 전위예술 1세대다. 1969년 최초의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역사적 의미만큼 그의 작품이 시장에서 인기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옥션 최윤석 미술품경매팀장은 “김구림은 한국 미술사에서 이미 한 자리를 차지한 작가다. 그러나 대중적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을 10여 건 경매했지만 200만원 내외의 소품뿐이었다”고 말했다.
김구림의 전속화랑에서는 사정을 잘 아는 이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있다. UM갤러리 엄은숙 대표는 “김구림은 시장보다는 미술관급 작가다. 해외의 반응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최근엔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통해 김구림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