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내고 고기 잡는 바다는 25%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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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회 한국 해양저널리스트 네트워크’에서 지도를 짚어 가며 한국의 해양 진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세계해양포럼조직위원회]

“세계 강국들이 앞다퉈 해양 자원 확보에 나서고 있어요. 그 와중에 우리 바다는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김재철(77) 동원그룹 회장이 손수 준비해온 태평양 지도를 펼쳤다. 25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회 한국해양저널리스트 네트워크’에서 ‘대한민국 해양산업의 현재와 미래 비전’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던 도중이었다. 드넓은 바다 지도는 탁구공만 한 하얀 동그라미들로 가득했다. 태평양 섬나라들이 설정한 ‘배타적 경제수역’(EEZ) 표시였다. 이곳에서 한국 어선이 조업을 하려면 ‘입어료’를 내야 한다. 돈을 내지 않고 자유롭게 고기를 잡거나, 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영역인 푸른색 영역은 지도에 나타난 바다 전체의 4분의 1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강연을 한 김 회장은 해양계의 ‘대부’다. 1935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졸업을 앞두고 국내 첫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항해사가 됐다. 3년 만인 26세에 선장의 자리에 올랐다. 남태평양 사모아에서 매번 최대 어획고를 올리며 업계 내 유명 인물이 되더니 69년 바다식량을 개척하겠다며 자본금 1000만원으로 동원산업을 세웠다. 이후 동업산업을 동원그룹으로 키웠다. 한편으로 무역과 자원외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해 24대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냈고, 올해 열리는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위원장으로도 뛰었다.

 김 회장은 “현재 한국 해양계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걱정에 강연에 나서게 됐다”고 운을 뗐다. 그는 “세계에서 한국의 ‘해양력’이 점점 도태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우선 세계 2~3위를 호령하던 원양어업이 최근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동안 세계 각국이 EEZ를 설정하면서 국내업체들이 1년에 입어료를 1억 달러(약 1140억원) 가까이 내야 하게 된 게 문제였다. 5, 6개 업체를 빼놓고는 대부분 영세업체인 한국 원양업계엔 큰 타격이었다.

 자원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선진국이 국가 차원에서 EEZ를 기반으로 해저자원 발굴에 돌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거돈 대한해양연맹 총재는 “현재 미국과 일본은 각각 한국보다 30배, 20배의 자금을 들여 해저탐사 및 해양자원 확보를 진행하고 있다”며 “21세기는 해양의 시대인데 한국은 지금 이 분야에서 손을 놓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일본이 독도에 야욕을 드러내는 것도 부근에 매장된 ‘메탄 하이드레이트’라는 에너지 자원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양 부문의 행정을 쪼개 맡으면서 정책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옛 해양수산부가 사라지고 그 기능을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가 나눠 받으면서 장기적으로 추진해왔던 정책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그마저도 해양수산부가 있던 11년6개월 동안 15명의 장관이 갈리는 등 실질적인 정책이 실행되기 어려웠다. 단적인 예로 현재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수산식품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해양전문인재교육을, 국토해양부에서 해양 자원 업무를 각각 맡고 있다.

  김 회장은 한국이 해양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해양·해군·해운업 등을 총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해양행정 일원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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