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발전은 인위적 생태계 … 한마디로 동물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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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 자본주의 생태계의 새로운 모색’ 세미나를 경청하고 있는 방청객. [최승식 기자]

“공생발전(ecosystemic development)은 자연 생태계처럼 다양한 계층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공생할 수 있는 시장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적 질서가 아닌 인간의 계획으로 만들면 그게 생태계인가? 동물원이지….”

 24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중앙일보 주최로 열린 ‘한국 자본주의 생태계의 새로운 모색’ 국정과제 세미나에선 정부의 국정철학인 공생발전에 대한 날 선 비판도 나왔다. 주로 자유주의 신념이 강한 학자들의 비판이지만 정부도 경청할 부분이 적지 않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간의 계획에 의한 인위적 질서는 필연적으로 규제와 통제를 필요로 하며, 정부의 역할과 개입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지적했다.

 공생발전은 계층 간, 대·중소기업 간 조화와 공생을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최적의 상태’는 누가 결정할까. 송 선임연구위원은 “공생이라는 최적의 상태는 정치적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 개입의 확대에 따라 공생을 위한 정책은 인기영합적으로 될 것”이라고 했다.

 친서민 정책도 도마에 올랐다.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는 인기영합적 정책이라는 비판이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미소금융, 햇살론은 저소득·저신용자에 대한 소모성 지원이 될 우려가 크다”며 “자립을 지원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게 아니라 대출에 의존하는 소비성향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든든 학자금)도 취업난 등 대학 진학에 따른 위험을 정부가 부담하기 때문에 유인체계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했다. 소득이 생기기 전까지 상환 의무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취업 동기를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지적도 했다.

 공정사회를 위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오히려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 아이러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의 개입과 규제가 지배적인 사회는 연줄과 같은 경쟁제한적 요소가 경쟁의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이런 논리다. “정부의 개입과 규제가 많으면 기업이 수익을 얻기 위해 생산 효율화나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 정부로부터 보호나 특혜를 얻기 위한 지대(地代) 추구 행위에 치중하게 된다. 지대추구는 주로 학연·지연 등을 이용하거나 이익집단의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이뤄진다. 연줄이 중시되면 결과의 공정성이 문제가 된다.”

 좌승희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는 “공생발전에는 공동체주의적 요소가 있다”며 “이제 우리 모두는 카를 마르크스의 제자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타심, 유대감, 이웃사랑, 연대감 같은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따뜻한 자본주의’나 영국 칼럼니스트인 칼레츠키가 제안한 ‘자본주의 4.0’ 같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는 “‘흥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흥한다’는 이념이 제도적으로 구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 교수는 “자본주의 4.0보다는 오히려 포퓰리즘적 민주주의를 막기 위한 ‘민주주의 4.0’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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