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무심투'로 재기한 임선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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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11일 센트럴시티에서 열린 2000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임선동(현대)은 시종일관 담담한 표정이었다.

올 시즌 3류 투수 수준인 3천300만원의 연봉을 받은 임선동이 당초 동계훈련기간 품었던 최대의 목표는 선발 투수진 합류였다.

지난 시즌만해도 임선동의 야구인생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휘문고와 연세대를 거치면서 `제2의 선동열'로 불릴 만큼 뛰어난 재질을 인정받았던 임선동은 대학을 졸업한 뒤 연고구단 LG와 일본진출을 놓고 지루한 법정싸움을 벌였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우여곡절 끝에 97년 LG 유니폼을 입은 임선동은 데뷔 첫 해 11승7패로 가능성을 보였으나 98년은 1승6패로 주저앉았고 현대로 이적한 지난 해에는 단 1승도 올리지못했다.

그러나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야구 전문가들은 달라진 임선동의 모습에서 그의 야구 인생이 다시 한번 꽃을 피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100㎏을 훨씬 상회했던 몸무게가 10㎏이상 줄어든 대신 130㎞대에 머물렀던 투구 스피드가 10㎞이상 빨라졌기 때문.

투구폼이 안정되면서 임선동의 변화구의 각도와 제구력도 몰라보게 향상됐다. 결국 임선동은 18승4패로 공동 다승왕에 올랐고 174개의 삼진으로 탈삼진 타이틀까지 차지했다.

연봉 3억1000만원을 받은 팀 선배 정민태보다 뛰어난 활약이었다.

그러나 임선동은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앞서 드라마보다 극적인 자신의 재기를 달라진 투구폼과 구속 등 기술적인 요소 때문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단순하게 '운' 탓으로 돌렸다.

"제4선발만해도 다행"이라는 마음 자세로 오히려 편하게 공을 던진 것이 운좋게 통했다는 주장이다. "다승왕 타이틀보다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승리투수가 된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는 임선동은 다음 시즌 목표까지도 순순히 밝히려하지 않았다.

"올 시즌 운이 좋아 좋은 성적을 거둔만큼 내년에도 운이 좋기를 바랄 뿐"이라며 담담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무심투'로 무장하고 '풍운아'에서 성숙한 인간으로 변신한 임선동이 다음 시즌 올해의 성공을 이어나갈지 지켜보는 것도 프로야구 팬들의 즐거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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