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나오셨습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7호 30면

연세대 한국어학당에는 여러 나라 사람이 있었지만 한국어 공부에는 일본인이 역시 유리했다. 야구 중계에서 ‘4번 타자’ ‘유격수’ ‘삼구삼진’ 은 막 배우기 시작한 나도 금방 이해가 돼 기뻤다. 배우지도 않은 단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니 처음 느끼는 쾌감이다. 사전을 찾으며 악전고투하던 서양말과는 달랐다.

그래도 첫 석 달간은 고생도 있었다. “저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말을 잘 못합니다”까지는 술술 나온다. ‘뭐야, 잘하면서’ 하고 상대가 좍 이야기하는 순간부터 먹통이다. 어떤 친구는 겸손하게 “별말씀 다 하십니다”고 한다는 것이 “별말씀 다 하십시오”라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나의 관심은 말에서 비롯됐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은 말이 몸속으로 스며들고, 소리 내어 말하면 그 정경 안에 있는 느낌이다. ‘~해 본다’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데도 ‘본다’고 한다. 조사 ‘가, 이’와 ‘는, 은’의 구분. ‘급커브’ ‘명콤비’ ‘페인트칠’ ‘○○킬러’ 등 외래어와 합쳐 쓰는 낱말. 일·한의 언어감각은 비슷한 점이 적잖다.
한자는 자유자재, 종횡무진인지라 ‘인구에 회자되다’ ‘불구대천의 원수’란 말을 쓰며 의기양양했던 시절도 있다. 혀도 잘 안 돌아가는 주제에 ‘유식한 말’을 하는 일본인 곁에서 당혹스럽지는 않았을까.

그 후 베이징에서 근무하게 되자 중국어를 배웠는데, 한국어 쪽이 훨씬 공부하기 쉬웠다. 그런데 중국에는 일본어에 밝은 분이 많아 이런 우스갯소리를 들려줬다.
일본에서 택시를 탄 중국인. ‘每度ご乘車有難うございます(늘 승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일본어를 못 하는지라 한자만 눈에 확 들어왔다. ‘有難’은 재난이 있다, 사고가 일어난다는 뜻. ‘탈 때마다 사고가 있다니, 어쩌다 이런 차를!’ 하며 내내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또 문화행사에 참석한 중국 요인이 식순에 적힌 ‘○○회장 挨拶’에 펄쩍 놀랐다. ‘挨拶’은 원래 손가락을 비트는 형벌. ‘일본까지 와서 고문을 당하다니’ 싶어 눈앞이 캄캄했다. 한데 가만 보니 일본인도 ‘挨拶 (인사, 축사)’를 하고, 장내에는 웃음이 흐르고 있어 뭔지 알았다고.

한자는 중국 것이지만 근대 초에 일본인이 서구의 개념을 한자로 표현한 많은 단어가 중국에 전파·보급됐다. ‘과학’ ‘민주’ ‘혁명’ ‘사회주의’ ‘철학’ ‘간부’ ‘긍정·부정’ ‘주관·객관’ 등의 기본 어휘들이 일본제 한자라는 사실이 중국 논문이나 책에 자주 나온다.

처음 한국에 온 1984년 이후 사회도 패션도 눈부시게 변했지만 말에도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먹거리 등 ‘물건’에 경어를 붙이는 음식점이 많아졌다. “피자 나오셨습니다.” “화장실요? 나가서 오른쪽에 있으세요.”

굳이 호의적으로 보면 손님에 대한 존경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한국 사람에게 물어봐도 잘못된 표현이라는 답이다. ‘외국인이 뭐라는 게야? 다들 그렇게 말하는데’ 하고 뜨악한 표정을 짓는 젊은이도 있겠지만 말이다.

80년대 길거리나 버스에서 모르는 젊은 여성을 ‘아가씨’ 하고 불렀는데, 요즘은 줄었다. 남자 어르신들이 ‘어이, 처녀’라고 부르는 것도 여러 번 들었다. 젊은 여선생님이 얼굴을 붉히며 “처녀라니, 어째서 그런 말을 큰 소리로 하나 몰라. 정말!” 하고 불만스레 얘기하던 기억이 난다.

음식점 여종업원의 경우 전에는 ‘아줌마’라 불렀으나 지금은 ‘이모’라고도 한다. 일본도 그렇지만 ‘아줌마’란 호칭을 싫어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친근감이 드는 ‘이모’가 된 걸까. ‘고모’가 아닌 점도 흥미롭다. 왠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놀랄 만큼 닮은 점이 있는가 하면, 또 상당히 다르다. 말의 재미와 발견은 끝이 없다. 마지막으로 한자 공부에 더 힘을 쏟도록 제안하고 싶다. 그것 하나로 일·한·중의 의사소통이 많이 촉진될 것인데 어떨까.



미치가미 히사시(道上 尙史) 1958년 생. 2007~09년 주중 일본대사관 공사(공보문화원장)을 한 뒤 이번에 다시 한국에 부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