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책의 흐름]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중앙일보

입력

1997년의 환란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성장시대의 신화에 젖어있던 국민 모두가 당혹감에 휩싸였다.

특히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생각했던 서민들은 '상식'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물론 대공황이라든지 외환위기같은 것은 군부 쿠데타와 같은 반전의 계기가 없는 한 본질상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위기가 가져온 충격은 오래가는 법이다. 환란으로 한국인들이 받은 교훈은 '경쟁력을 가져야겠다'는 것이었다.

대규모의 정리해고와 대량실업사태를 보면서 많은 가장들은 무력감을 느꼈다. 환란의 와중에도 '가진 자'들은 더욱 부를 축적하는 역설적 현상을 보면서 이 땅의 중산층은 엄청난 박탈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외식비를 줄이고 담배값을 아끼는 마당에도 자녀교육비는 줄이지 않았다. '나는 힘이 없어 고생하지만 너는 경쟁력을 가져서 잘 살아다오'라는 부모들의 간절한 소망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는 그 내용보다 일단 출판의 타이밍이 절묘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 책이 80년대 후반 3저 호황기에 나왔더라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을까. 정부가 세계화를 부르짖고 대기업들이 중복과잉 투자를 하면서 온나라가 흥청망청하던 90년대 중반에 나왔더라면 세인의 주목을 끌었을까.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는 부자가 되는 방법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책이다. 미국식 사회에서는 정말 공감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사실 한국식 사회구조에서는 응용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런데도 왜 이 책이 그토록 인기를 끌었을까.

첫째는 '가난한 아빠'들의 열등의식을 자극했다는 점이다.

둘째 때마침 불어닥친 벤처창업의 열풍이다. 가난한 아빠들은 '부자 아빠'라는 말에 오기가 발동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학교를 팽개치고,회사를 뛰쳐나와 벼락부자가 된 벤처인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부자 아빠를 벤치마킹 해보고픈 심리가 발동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상식을 뒤엎는 진리를 제시한 복음서 같은 역할을 했다. 내가 지금까지 못살았던 이유를 설명해주는 책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학력에 매달리면 돈 못번다'는 저자의 주장은 얼마나 용기를 주는가. '돈이 없는 것은 죄악'이라는 말도 얼마나 절실한 말인가. 그러나 기존질서를 뒤엎고 기득권층을 비난하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 책에서 배워야 할 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지 못한다.부자가 되려면 '생각할' 필요가 있다.군중을 따라가기보다 독자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부자들의 위대한 점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남과 달리 생각했기에 부자가 된 사람들을 비난만 해서는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는게 이 책이 주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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